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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안보의 이중 위기” vs “위기에서 기회 올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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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배명복
배명복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오종택
오종택 기자 중앙일보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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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학 교수와 최진욱 원장은 개성공단에서 사드까지 거의 모든 문제에서 의견이 달랐지만 자체 핵무장에 반대하는 데는 모처럼 의견이 일치했다. 사진 왼쪽부터 최 원장, 권 교수, 배명복 논설위원. [사진 오종택 기자]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라는 북한의 초강력 도발에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협의라는 초강수로 맞서면서 한반도 정세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격랑 속으로 들어갔다. 과연 남북 관계와 동북아 정세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권만학 경희대 교수(한반도포럼 회장)와 최진욱 통일연구원장을 초대해 최근 상황을 짚어보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좌담회는 배명복 논설위원의 사회로 지난 16일 중앙일보 논설위원 회의실에서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좌담회] 한반도 정세 어디로 가나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특별연설에서 북한의 ‘체제 붕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대화와 압박에서 압박 일변도로 대북정책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두 분 생각은 어떤가.

 권만학 교수(이하 권) : 대북정책 기조가 특별히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붕괴와 흡수통일을 염두에 뒀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통일이라는 말을 이미 여러 차례 했다. 우리 식으로 북한을 통일하면 우리는 핵을 안 가질 것이기 때문에 핵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된다는 뜻 아닌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흡수통일 정책이 수면으로 떠오른 것뿐이라고 본다.

 최진욱 원장(이하 최) : 신뢰를 통한 점진적 변화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다. 북한 붕괴나 흡수통일을 노린 게 아니다. 핵을 가진 북한과는 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입장이었다면 박근혜 정부는 대화를 통해 핵을 가진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입장이었다. 대북정책의 초점을 북한 주민의 변화에 맞춘 것도 그 때문이다. 생활·문화·민생 인프라·생태·환경 등 다양한 통로를 통해 북한 주민의 의식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어떻게 붕괴 시도라고 할 수 있나.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두 분의 시각차가 너무 큰 것 같다. 어떻든 박근혜 정부가 북한과 대화하려고 나름 애를 쓴 것은 사실 아닌가.

 권 : 겉으로는 그렇게 한 게 맞지만 실효성이 없었다. 박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그나마 있던 대화나 교류의 제스처마저 포기하고 강경 일변도로 가겠다는 선언이다. 중국으로 통하는 ‘뒷문’이 열려 있는 한 아무리 북한을 제재하려 해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다.

 최 : 중국의 협조 없이는 실효적 제재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의 변화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안보적 위기 상황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나서서 진짜 제재를 하겠다는 뜻에서 개성공단 가동 중단 결정도 내린 것이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권 :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들어가는 연간 1억 달러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용됐다고 하지만 확실한 근거가 없다. 설령 그 돈 전부가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쓰였다 할지라도 북한의 무역 규모가 연간 70억~80억 달러에 달하는 상황에서 그 돈 없다고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못할까. 중국의 강력한 대북제재 동참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북한의 핵 개발은 중국으로서도 화가 나는 일이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북한을 죽일 수는 없다. 전략적으로 북한은 중국에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곳이다. 우리가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했다고 중국이 초강경 대북제재에 동참할 것으로 보긴 어렵다.

 최 : 2007년 최대 4억 달러의 현금이 남한에서 북한으로 들어갔다. 2억~3억 달러 규모의 쌀과 비료도 지원됐다. 그 이후 계속 줄어들었다. 그것을 북한은 철광석과 석탄 위주의 대중(對中) 무역으로 상쇄해 왔다. 하지만 광물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데다 수출량도 줄어들고 있어 북한의 대중 교역은 마이너스 상태다. 중국이 조금만 협조해도 상당한 압박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대북제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사드 카드는 좀 더 아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최 : 중국도 우리가 처음부터 사드 배치를 원했던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우리의 안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사드 배치 협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한·중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시각이 많지만 오히려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 때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일 공조를 강화했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에서 한·중 관계가 좋아진 측면도 있다. 중국 입장에서 한·미·일 공조를 막으려면 한국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사드 배치 카드가 중국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해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낼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권 : 사드는 군사적 실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무기 체계다. 명중률이 90%라고 하지만 100%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 아무리 조악한 수준이라 해도 핵폭탄 하나만 서울에 떨어져도 서울은 ‘불바다’가 아니라 잿더미가 된다. 또 사드는 우리 안보를 상당히 취약하게 할 위험이 있다. 사드를 배치하면 중국은 배타적경제수역(EEZ)이 획정되지 않은 서해에 군함을 보낼 가능성이 있다. 또 핵무기 일부를 한국을 향해 배치할 것이다. 미국이 체코와 폴란드에 사드를 배치하려 하자 러시아는 미·러 간 핵 균형을 깨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유사시 핵무기로 체코와 폴란드를 타격하겠다는 위협도 했다.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면 북핵에 중국의 재균형 변수까지 더해져 한반도의 안보 지형은 더욱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 미·중 갈등이 더욱 격화될 것이고, 한국은 점점 더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을 겨냥한 미국의 초강력 제재법이 지난주 발효됐다. 일본도 강력한 대북 독자제재에 들어갔다. 하지만 제재만으로 북한 체제의 변화나 붕괴를 유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권 : 권력 교체기 때마다 북한붕괴론이 나왔지만 다 빗나갔다. 1980년대 말 공산권의 붕괴는 내부로부터의 변화를 통한 붕괴였다. 북한 주민의 생존을 국가와 당이 장악하고 있는 한 주민들의 조직적인 반란을 기대하긴 힘들다. 북한 경제의 70%가 장마당에 의존하고 있다면 제재가 아니라 시장경제가 번성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되레 체제 붕괴를 앞당기는 길 아닐까.

 최 : 박 대통령이 ‘체제 붕괴’를 언급한 것은 제재를 통해 북한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북한 체제가 변해야 주민도 살고 핵 문제도 해결될 수 있지만 북한은 핵을 고집하면서 안보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집권당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자체 핵 개발을 주장하는 등 핵무장론이 공론화하는 분위기다. 각계 원로 200여 명이 핵무장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민의 다수가 핵무장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권 : 핵에는 핵 이외에 대응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잃을 게 너무 많다. 북한은 자급경제 체제인 데 비해 우리는 절대적으로 해외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핵무장을 한다면 다른 걸 다 잃어야 한다. 집권당 원내대표가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무책임하거나 무식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최 : 오늘 좌담회에서 처음으로 권 교수와 생각이 일치한 것 같다. 핵무장은 현실적이지 않다. 핵무장은 북한의 비핵화 노력을 우리가 포기한다는 것인데, 이는 한반도를 더 큰 위험에 빠트리는 것이다.

 -미국의 전술핵을 다시 들여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권 : 미국은 이미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이 싫다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들여오나. 중국과의 불필요한 마찰 가능성도 크다.

 최 : 전술핵 반입이나 핵무장보다는 그나마 사드가 낫다.

 -남북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가운데 3~4월에는 사상 최대 규모의 한·미 연합훈련이 예정돼 있다. 4월에는 한국 총선이 있고, 5월에는 북한 당대회가 열린다. 연말에는 미국 대선이다. 남북 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전망하나.

 권 : 남북 갈등과 미·중 갈등이라는 이중의 위기가 닥칠 것으로 본다. 지금 한반도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 상황이다. 마치 한국전쟁 직후로 돌아간 느낌이다. 북한이 핵무기로 남한을 본격적으로 위협하는 상황이 되면 북한의 ‘핵 공갈’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사드 문제까지 겹쳐 동북아 국제정치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미·중은 양보 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향후 20~30년간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면서 한국은 미·중 갈등 구도에 더 깊이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최 : ‘중국 경사론’ 소리까지 들어가며 우리가 중국에 접근한 이유는 딱 두 가지, 즉 비핵화와 통일 때문이었다. 중국의 힘을 빌려 이 문제를 풀고자 했는데, 그게 안 되니까 방향을 틀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당분간 남북 관계 경색은 더 심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남북 관계와 한·중 관계가 다 끝난 것처럼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면서 메시지 관리를 잘 하면 지금의 위기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기회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고 본다.

 -지금의 외교안보팀 역량으로 그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외교안보팀 전면쇄신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권 : 외교안보팀이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면 인적 쇄신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지 않은가. 기본적으로 모두 대통령의 결정이고, 대통령의 정책이었다. 위기일수록 대통령은 흥분하지 말고 냉정해야 한다. 외교정책의 기본은 신중함이다. 흥분하면 일을 그르친다.

 -위기에 대처하면서 궁극적으로 북핵 문제를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권 : 첫째, 북핵 문제의 논의 구도가 민주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 사람의 지혜가 열 사람의 지혜보다 나을 수는 없다. 무슨 얘기만 하면 종북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에서는 근본적 해법이 나올 수 없다. 둘째, 질문을 바꿔야 한다. 북한을 어떻게 제재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북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것인가가 질문이 되어야 한다. 과거 북한 핵 문제에 관한 모든 합의에서 빠지지 않은 두 가지가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었다. 하지만 비핵화 논의만 있었지 평화체제 논의는 없었다.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위에서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동시에 실현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게 가보지 않은 마지막 길이다.

 최 : 북한은 어떻게든 외부에 적을 만들어 핵을 보유할 명분을 찾아 왔다. 지금은 안보적 위기 상황인 만큼 모든 정책의 초점을 압박을 통한 북한의 변화에 맞춰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강력한 대북제재를 초당적으로 뒷받침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때다.

정리=이지운 인턴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권만학 교수는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1993년부터 경희대 교수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외교학을 전공하고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최진욱 원장은 …

통일연구원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하다 2014년 3월부터 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외국어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미국 신시내티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