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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로 만든 탁자, 화강암 부엌 정글을 묘사한 도자기 ‘야생미’ 물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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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파리서 열린 인테리어 전시회 ‘메종 오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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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다케시 사와다가 디자인한 어린이용 의자 ‘밤비 체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인테리어 전시회 ‘메종 오브제(Maison&Objet)’는 이 분야에서 가장 명망있는 행사다. 대형 가구부터 조명, 테이블 웨어까지 인테리어 디자인의 모든 품목을 다루며, 대기업부터 신생 디자이너까지 전시 참가자의 층 또한 두텁기 때문이다. 지난달 파리 노르 빌뺑트 전시장에서 열린 ‘메종 오브제 2016’에는 60개국에서 온 2978개 업체가 전시에 참여했다.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웬만한 인테리어 디자인 업체는 대부분 이 자리에서 신제품을 선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스레 이번 시즌 인기를 얻게 될 홈 인테리어 트렌드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올해의 트렌드를 짚어봤다.

‘메종 오브제 2016’은 8개의 거대한 전시관에서 열렸다. 전시장 면적은 모두 합쳐 24만2000㎡. 서울월드컵경기장 대지면적(21만6700㎡)과 맞먹는 크기에 약 3000여개 부스가 차려졌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바이어, 언론인 등 143개국에서 7만6000여명이 다녀갔다. 지난해 9월의 메종 오브제보다 관람 인원이 큰 폭으로 줄었는데, 지난해 말 파리에서 발생한 테러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전시장 곳곳에서는 엄중한 보안검색이 실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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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실버웨어 브랜드 퓌포카는 손잡이 없는 와인잔을 포함한 소믈리에 컬렉션을 처음 선보였다. 일반 와인잔과 마찬가지로 잔 아랫부분이 볼록해 이를 받칠 수 있는 받침대를 디자인했다.

사실 이런 거대한 공간에서 트렌드를 알아차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 많은 전시자들이 한 방향을 향해 디자인을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에서도 예년과는 다른 소재와 색깔·형태가 보였고, 각 브랜드가 전시한 제품에서 공통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연으로 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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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질감을 낸 벨기에 디자이너 글렌 세스티그의 ‘시그니처 부엌’.

메종 오브제는 행사 때마다 트렌드 테마를 정한다. 올해의 테마는 ‘와일드(wild·야생)’. 테크놀로지와 디지털, 도시화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자연이나 자연적인 것을 가치있게 생각하는 원시주의 및 친환경 디자인을 생각해보자는 취지다. 디자이너 다케시 사와다가 어린이를 위해 만든 밤비 의자와 양 의자, ‘아이브라이드’가 내놓은 에뮤 다리의 사이드 테이블은 야생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핀치(Pinch)’의 정육면체 스툴 겸 탁자 ‘나뭇가지 테이블’은 나뭇가지 모양을 생생하게 살렸다.

대리석을 비롯한 돌 소재도 자연미를 지닌 대표적인 소재다. 지난해에 매끈한 대리석이 인기를 끌었다면, 올해는 거친 질감의 대리석이나 돌 소재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벨기에 건축가인 글렌 세스티그는 이란산 티타늄 화강암을 소재로 부엌을 만들었다. 수직으로 선 부엌 본체는 거실과 공간을 분리해주면서 찬장과 싱크대, 바 테이블의 세 가지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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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는 레오파드·원숭이 등 이국적인 동물 그림을 담은 접시와 찻잔 등 도자기 컬렉션을 내놓았다.

야생 동물을 담은 도자기도 눈길을 끌었다. ‘에르메스’는 동물우화집 속 사자와 레오파드, 코끼리·원숭이·앵무새 등 이국적인 동물 그림을 정글을 배경으로 도자기에 담았다. 오랜 기간 함께 작업해온 야생 아티스트 로버트 달렛의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에르메스는 지금까지는 이국적인 동·식물 스케치를 실크 스카프에만 담아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테이블웨어로 옮겨왔다. 사자와 레오파드의 부드러운 털과 날렵한 라인, 위엄있는 자태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이 식기에 식사를 하면 가상의 사파리를 즐기는 느낌이 들만하다.

‘와일드’ 테마를 가정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소재의 질감에 관심을 가져보자. 나무·돌·짚 같이 자연에서 얻은 소재와 동물·깃털·스톤 등을 연상시키는 프린트와 패턴을 활용한다. 가죽이나 울, 인조모피를 더하면 ‘와일드’ 인테리어를 완성할 수 있다.

나무, 스틸을 대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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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위는 중국계 디자이너 듀오인 네리&후의 ‘호기심 캐비닛’. 다목적 수납장을 바퀴 달린 수레 위에 얹었다.
왼쪽 아래는 나뭇가지 모양을 생생하게 살린 영국 디자인 스튜디오 ‘핀치’의 스툴 겸용 테이블.

올해 전시장에는 황동과 구리, 크롬 같은 소재가 예전만큼 눈에 띄지는 않았다. 지난 몇 년간 인테리어 업계를 장악했던 두 소재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따뜻한 느낌을 주는 나무 소재를 채택한 브랜드가 많았다. 차가운 스틸은 최소한으로 사용됐고, 다양한 마무리 기법으로 조금의 차가움마저 가라앉히려는 모습이었다.

중국계 디자이너 듀오인 네리&후(Neri & Hu)의 작품인 ‘호기심 캐비닛’은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납장을 바퀴 4개가 달린 수레 위에 얹은 재미난 디자인이다. 앞면과 뒷면에 유리로 만든 미닫이 문을 달고 양옆은 메탈 메쉬로 처리했다. 시골 할머니댁에서 본듯한, 클래식한 느낌을 세련되게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위우드(WeWood)’는 연인들을 위한 의자 겸 데이베드(침대 겸용 소파)를 참나무로 만들었다. 나무 프레임의 위치와 높낮이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서 총 6종류의 다른 형태를 만들 수 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북유럽풍 인테리어의 강세는 계속됐다. 영국 가구 브랜드 ‘에콜(Ercol)’은 질 좋은 나무와 무채색 패브릭을 사용한 북유럽 스타일 2인용 소파 ‘마리노’를 선보였다. 스키점프대를 연상시키는 유려한 커브의 팔걸이와 간결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스페인의 차세대 디자이너로 꼽히는 하이메 아욘은 미니멀한 디자인의 책상을 선보였다. 움직이는 미술 ‘키네틱 아트’의 선구자인 미국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1898~1976년)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강낭콩 모양의 책상 위에 동그란 대리석 또는 황동의 복층 구조물을 얹고, 책상 다리는 파우더코팅(액상염료 대신 파우더를 뿌린 뒤 고온에서 구워 색을 입히는 기법)을 한 스틸 소재를 썼다.

옛 디자인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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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판과 디지털 음악파일을 모두 들을 수 있는 콘솔 형태의 스피커.

오래된 디자인을 다시 꺼내어 새롭게 제품으로 출시하는 경향도 눈에 띄었다. 프랑스 명품 가구 브랜드 ‘리네로제(Ligne Roset)’는 디자이너 피에르 샤르팽의 1998년작 ‘슬라이스’를 다시 출시했다. 모듈형 암체어인 ‘슬라이스’는 등받이와 팔걸이가 있는 암체어에 발받침을 붙여서 사용할 수 있다. 발받침을 여러개 이어붙이면 데이 베드 또는 긴 소파로 변신한다. 발받침 한 개 한 개가 선명한 색을 띠는 멀티컬러 제품이어서 인테리어 포인트가 된다.

덴마크의 전설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아르네 야콥슨이 1929년 디자인한 벨뷰 램프는 가구 브랜드 ‘앤드 트래디션(&tradition)’이 오리지널 작품을 되살려 출시했다. 야콥슨의 알파벳 시리즈는 덴마크 디자인 회사를 통해 머그컵과 접시, 화분 등으로 제품화됐다.

눈길 끄는 소품과 장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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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메 아욘의 ‘복층 테이블’. 움직이는 미술의 선구자인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메종 오브제는 가구도 많이 있지만 ‘오브제’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소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커튼·패브릭·쿠션 등과 함께 테이블웨어·키친웨어가 유명하다. 실버웨어 브랜드 ‘퓌포카(Puiforcat)’는 은과 유리로 만든 독특한 디자인의 와인잔을 포함한 새로운 바웨어 컬렉션을 내놓았다. 많은 전문가들이 꼽은 ‘갖고 싶은 아이템 1위’에 올랐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의 실버웨어로 유명한 퓌포카는 프랑스 대통령 집무실인 엘리제궁에 실버웨어를 공급하는 업체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마이클 아나스티아데스와 프랑스인 소믈리에 엔리코 베르나르도가 협업해 손잡이 없는 와인잔을 만들어냈다. 레드·화이트·스파클링·디저트 와인잔과 리큐어잔 등 5종류의 잔과 은으로 만든 받침이 한 세트다. 실용적이면서도 장식적인 요소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손잡이가 없는 와인잔은 전통적인 와인잔에 마시는 것보다 와인이 입술에 닿는 시간이 더 빠르기 때문에 와인 맛도 달라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했다.

유명 디자이너들의 새 작품도 볼 수 있었다. 디자이너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는 덴마크 브랜드 ‘조지 젠슨’에서 서재용 장식품을 새로 내놨다. ‘라 보아트 컨셉트’는 콘솔 형태의 하이파이 스피커와 음악 재생 시스템을 선보였다. 옛날식 턴테이블과 스마트폰 음악 파일을 모두 재생할 수 있어 멋과 실용을 잡았다. 소형 책상 모양에 검정색 래커칠과 가죽을 덧댄 디자인이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손색없다.

블루, 그리고 파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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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가구업체들은 올해 신제품에 파란색을 많이 썼다.

올해 메종 오브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색깔은 푸른색이었다. 파랑색은 로즈 쿼츠(파스텔핑크)와 함께 올해의 트렌드 컬러로 꼽힌다. 리네로제의 마롤라 소파와 ‘펜디’의 슬론 소파가 모두 파란색으로 전시됐다. 크리스털 브랜드 ‘라리크(Lalique)’는 마리오 보타가 디자인한 꽃병 ‘지오’를 코발트 색으로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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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덴마크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슨이 1929년 디자인한 ‘벨뷰 램프’.
(가운데) 피에르 샤르팽의 1998년 작품 ‘슬라이스’를 올해 린네로제가 신제품으로 내놨다.
(왼쪽 아래) 올해의 트렌드 컬러인 로즈 쿼츠색의 린네로제 소파.

올해 전반적으로 색채가 다양해졌다. 그 중에서도 우유를 섞은 듯한 파스텔톤과 광택없는 색깔의 가구가 많았다. 덴마크 가구 브랜드 ‘노르만 코펜하겐(Normann Copenhagen)’은 클래식 제품인 ‘폼’ 암체어를 처음으로 다양한 색 천으로 씌웠다. 연분홍·카키 등 차분하면서도 선명한 색이 주를 이뤘다. 바퀴가 달린 미니 트롤리인 ‘블록’과 벽에 거는 ‘포켓’ 정리함 등도 밝은 색 제품들을 새로 선보였다. 스칸디나비아 브랜드 ‘무토(Muuto)’는 ‘파이버 사이드 체어’를 그레이·더스티그린·더스티레드 등 형형색색으로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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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각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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