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화] 닮은 지성, 토리노서 쓰러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와 이탈리아 시인 체사레 파베세(1908~50)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둘을 잇는 것은 이탈리아 북부 도시 토리노.

이곳에서 니체는 1889년 어느 날 뇌일혈로 쓰러졌으며, 파베세는 자살했다. 또 니체는 토리노에 대해 "내 조국으로 선택했다"고 표현했으며, 파베세는 토리노를 "정신적으로 내가 태어난 도시"라고 치켜세웠다.

이 두 천재를 잡아 끌었던 토리노란 도시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프랑스의 화가이자 작가인 프레데릭 파작(48)은 여기에 초점을 맞춰 니체와 파베세의 삶을 재구성했다.

서로 다른 시기에 살았던 두 사람의 삶을 교차해 보여주며 3백여장의 음울한 이미지를 띤 일러스트레이션을 삽입해 '거대한 고독'(현대문학)이라는 한권의 책을 펴냈다.

이 책 '거대한 고독'은 프랑스의 전위 문학 계간지 '텔 켈(Tel Quel)'지를 창간한 실험문학의 선두주자 필립 솔레르스가 "완벽하다"고 격찬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책은 "나의 아버지는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셨다. 나는 아홉살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서른여섯 살에 뇌일혈로 죽었을 때, 프리드리히 니체는 겨우 다섯살이었다.(…) 아버지가 서른여섯에 뇌종양으로 죽었을 때 체사레 파베세는 여섯 살이었다"로 시작한다.

니체.파베세,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토리노에서 4년여를 보낸 파작까지 어린시절 아버지를 잃었다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부재는 이후 이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다. 그들은 어머니.할머니.누이 등으로 이뤄진 여인사회에서 자라난 유일한 남성이었다. 또 여인을 짝사랑하다 실연당한 경험까지 똑같다.

교양있는 말투와 부드러운 눈길로 매력을 발산하던 이들이지만, 펜을 들면 극단적 여성 혐오증을 드러냈다. 선각자이면서도 복고주의자이고, 개인적 관계에서는 여성주의자이면서도 글에서는 여성 혐오론자였던 복잡한 내면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묘하게도 토리노에 와서는 안정감을 찾는다. 니체는 바젤대 그리스 어문학과 교수직을 사임하고 10여년이 지난 1888년, "어린시절만큼이나 언제나 혼자"라는 말을 남기고 토리노로 향했다.

토리노에 가서는 "내게 지금 필요한 곳이 바로 이 도시"라고 격찬해 마지 않았다. 이곳에서 니체는 '바그너의 경우'와 그의 자서전이라 할 '이 사람을 보라'를 집필한다.

파시스트에게 체포돼 복역했던 파베세는 "옛 것과 새것이 모여 귀족적으로 완성된 몽상의 도시. 나태로 빠져드는 기분 좋은 성향을 지닌 정열의 도시" 토리노로 온다. 그리고 토리노를 자신의 시와 소설 속에 무수히 등장시킨다.

그런데 둘은 토리노에서 비극을 맞았다. 니체는 토리노에서 마부에게 매를 맞는 말을 부여잡고 울다 쓰러져 10여년을 정신이상자로 지내다 바이마르에서 죽었다.

파베세는 이탈리아 최고 문학상인 스트레가상을 받고 아는 여인들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퇴짜를 맞고, 한 여인에게는 "당신은 지루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상을 받은 한달 뒤 파베세는 한 호텔방에서 자살했다. 불안.우울로 힘겨웠던 두 삶은 '거대한 고독'의 터널 같은 몽환의 도시 토리노에서 생의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홍수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