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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카 바이러스로 두 번 우는 브라질 여성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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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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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보라 디니즈
브라질리아대 교수

브라질이 국가 비상사태에 놓였다. 지난해 10월 이래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소두증 아기가 4000명 넘게 태어났다. 브라질 보건당국은 이 바이러스에 대해 더 많은 정보가 알려질 때까지 가임기 여성들이 임신을 유보해 달라고 권고했다.

빈곤층 여성들이 집중 감염
임신 유보 지시는 비합리적
모기 퇴치 방안을 마련하고
피임·낙태 금지부터 풀어야

 나는 브라질 여성이다. 임신을 계획해 오던 내 친구들은 지카 바이러스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다. 그녀들이 살고 있는 수도 브라질리아의 부촌에서는 이 바이러스와 관련된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기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지카 바이러스를 둘러싼 공포 속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가 확인됐다. 지카 바이러스가 브라질 사회의 불평등을 그대로 노출시켰다는 점이다. 바이러스 감염은 젊고 가난한 흑인이나 원주민들에게 집중됐다. 이들 감염자의 절대 다수는 브라질의 빈곤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지카 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가장 높은 여성들은 모기를 피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사는 빈민들이다. 이들이 사는 곳에는 뎅기열·치쿤구니야 같은 질병이 이미 만연해 있다. 주거 환경도 열악하다. 좁은 곳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살고, 하수 시설도 형편없어서 썩은 물이 곳곳에 고여 있다. 지카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의 서식지로 적격이다. 빈곤 지역에 사는 여성들이 모기에 물리는 걸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동틀 때부터 땅거미 질 때까지 빈곤층 여성들은 야외에서 일하고, 장을 보고, 아이를 돌봐야 한다. 임신·출산의 보건 서비스를 받을 가능성이 가장 낮은 계층도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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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카 바이러스는 좀처럼 얻기 힘든 기회를 브라질에 줬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양육에 대한 권리를 살려주고, 국가가 여성을 대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기회 말이다. 여성에게 피임·낙태의 권리를 알려주지 않은 채 그저 임신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건 합리적 정책이 아니다. 빈부 격차에 상관없이 모든 여성의 성과 임신·출산에 대한 권리는 존중돼야 한다. 정부는 지카 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높은 빈곤 여성 집단에 정책의 초점을 두는 한편 포괄적인 성 보건 서비스를 모든 브라질 여성에게 제공해야 한다.

 슬프게도 브라질 낙태법은 세계에서도 가장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임신부가 합병증에 걸릴 위험에 놓였거나, 강간을 당했거나, 태아가 무뇌아 증세를 보인 경우에만 낙태가 합법이다. 태아에게 심각한 신경 장애가 발견돼도 합법적으로 중절할 수 없다. 그렇다고 브라질의 낙태 비율이 낮은 것도 아니다.

 2010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브라질 여성 5명 중 1명은 40세 이전에 한 번 이상 낙태를 경험했다. 이 가운데 압도적 다수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불법 낙태 수술을 받았다. 브라질 법에 따르면 500만 명 넘는 여성이 낙태를 저질러 감옥에 갔다. 세계 4위인 브라질의 수감자 숫자의 10배에 달하는 수치다.

 게다가 낙태에서도 빈부 격차가 작용한다. 부유층 여성은 안전이 보장된 중절 수술을 받을 수 있지만, 지카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이 가장 높은 빈곤층 여성은 그러기 어렵다. 이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출산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빈곤 지역 보건소들은 감염 여부를 알려주는 혈액검사나 태아의 장애를 진단하는 초음파검사를 해줄 여건이 안된다. 정부의 안이한 대응으로 지카 바이러스가 기하급수적으로 퍼진 지금 브라질 국민은 이 바이러스에 노출된 빈곤층 여성들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저소득 근로 여성과 가정부. 이들이 바로 지카 바이러스의 민낯이다. 브라질에선 자녀 양육을 여성 혼자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으로 태어난 아이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 또한 여성이다.

 소두증 아기를 낳은 뒤 아이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여성들의 슬픈 얘기가 TV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정부마저 이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지카 바이러스 감염으로 고통받는 빈곤 여성과 자녀를 위해 정부는 즉각 재정 지원에 나서야 한다. 또 단기적으로는 모기 서식지를 없애 개체 수를 통제해야 한다. 이어 국제사회와 공조해 지카 바이러스를 퇴치할 방안을 개발해야 한다.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는 브라질 여성들에게 자신의 임신 여부를 통제할 권한을 줘야 한다.

  변화가 필요하다. 정부는 이제라도 여성이 임신과 출산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값싸고 용이한 방식으로 피임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중절을 합법화하고 안전한 수술을 받게끔 해줘야 한다. 필자가 설립한 생명윤리연구소 아니스(Anis)는 대법원에 이런 요구를 담은 문서를 제출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우리는 브라질 전역의 여성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았다. 꿈꿔 왔던 임신이 지카 바이러스 때문에 악몽으로 변해 괴롭다는 여성도 있었고,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를 어디에서 치료할 수 있느냐며 오열하는 여성도 있었다. 브라질에서 낙태가 가능해질 때까지 얼마나 더 많은 여성이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할지 가슴이 먹먹하다.

데보라 디니즈 브라질리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