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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표현의 자유’에 상처 남긴 부산영화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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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치 외압 논란을 빚어 온 부산국제영화제가 새로운 사태를 맞았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시장이 당연직으로 맡는 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민간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영화제의 독립성을 천명하는 취지에서 조직위원장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서 시장은 26일 임기가 만료되는 이용관 공동집행위원장을 재위촉하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영화제의 두 축인 조직위원장과 집행위원장이 함께 물러나는 상황이 됐다.

 이로써 부산영화제 논란은 일단 봉합되는 모양새다. 부산시와 영화제는 2014년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놓고 갈등을 빚어 왔다. 상영 중지를 요청하는 부산시의 요구를 이용관 위원장이 거부하자 부산시는 지난해 11월 이 위원장을 협찬 중개수수료 허위 집행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정치 보복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외 영화인 100여 명이 최근 영화제 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오기도 했다. 서 시장의 이날 선언은 그간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특단의 조치로 보인다.

 그럼에도 부산영화제는 큰 상처를 안게 됐다. 20회 행사를 치르며 아시아 대표 영화도시로 성장한 부산의 이미지에 오점을 남겼다. 지구촌 영화의 오늘을 보여 주는 문화축제에 정치가 개입했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매해 20만 명이 다녀가는 부산영화제는 그간 부산을 넘어 아시아 영화를 세계로 소개하는 창구 역할을 해 왔다. 광주비엔날레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 문화행사로 커 왔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을 지켜온 덕분이었다.

 앞으로 8개월 남은 올해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야 할 숙제도 있다. 현재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를 강수연 위원장 단독체제로 갈지, 아니면 이용관 후임 집행위원장을 선임할지 결정되지 않았다. 민간 조직위원장을 뽑으려면 정관도 개정해야 한다. 영화제 측도 정관 개정 없는 조직위원장 사퇴만으로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번 무너진 성을 다시 쌓기는 이렇게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