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멀 줄 알면서도 배고파 독초 먹는다니…당연히 도와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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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인 한주연씨는 “작은 보탬이지만 나도 남을 돕는 데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전민규 기자]

“실명될 걸 알면서도 배가 고파 독초를 캐먹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이야기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5년째 해외아동 후원 한주연씨
용돈·장애인연금 쪼개 나눔활동
“앞 못보는 고통 막는 데 힘 보탤 것”

 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2학년에 재학중인 한주연(23)씨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엄마 뱃속에서 6개월 만에 세상에 나와서 오랫동안 인큐베이터 안에 있었고 끝내 ‘미숙아망막증’이란 병을 얻었다. 망막의 혈관이 덜 성숙한 상태로 태어나 시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는 병이다.

 태어나서 한번도 빛을 보지 못한 그녀가 햇수로 5년째 해외아동 후원에 나서고 있다. 몸이 아파 열 아홉살부터 다녔던 고등학교 시절엔 월 5만원의 용돈을 쪼개서,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장애인연금 중 일부를 떼어 매월 3만~3만5000원씩 꾸준히 후원했다.

큰 액수는 아니지만 나눔을 멈출 수 없었던 건 중학교 시절, 굶주린 아프리카 아이들이 눈을 멀게하는 풀까지 먹는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고부터라고 한다.

 “보이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 일인지 전 겪어봐서 잘 알아요. 혼자 길을 가다 저도 모르게 차도로 발길을 떼 자살 시도자로 오인 받기도 했죠.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식당조차 가지 못해 배고픔을 참아야 하고, 무엇보다 늘 노심초사하는 부모님을 볼 때…. 그런데 그 아이들은 배가 고파 이런 고통을 선택하는 거잖아요. 제 작은 힘으로라도 이런 비극을 막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한씨는 지난해 5월 국제구호개발NGO 플랜코리아를 통해 라오스 우돔싸이 지역에 사는 남자아이 페웃(4)을 만났다. 요즘은 페웃이 보내온 편지를 읽는 게 가장 큰 행복이다.

직접 볼 순 없지만 PDF 파일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리더기로 페웃의 마음을 읽는다. 이외에도 한씨는 틈날 때마다 남미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를 위해 찬송가 가사를 영어로 번역하는 봉사활동도 한다.

 한씨는 여전히 더 큰 후원자를 꿈꾼다. “아직은 작은 도움밖에 줄 수 없지만 앞으로도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고 싶어요. 특히 학대받은 아동이나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위해 가정위탁봉사를 꿈꿔요. 제가 그랬듯, 도움을 받고 또 돕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글=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사진=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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