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죽은 과학기술인들 다시 뛰게 할수 없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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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호 30면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를 이끌어온 KIST가 설립된 것은 1966년이다. 과학기술 행정을 담당하는 과학기술처가 설립된 것이 그 다음 해이니 50년 전에 과학기술 연구와 행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과학입국, 기술자립’을 선언하고 과학기술인을 비롯한 모든 국민이 국가 경제발전을 위하여 피땀 흘려 일했다. 그 결과 최빈국에서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부흥을 이루었다. 한국인으로서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경제부흥의 주역이었던 과학기술인들의 사기가 최근 크게 떨어져 있다. 그러면 무엇이 과학기술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주범이고, 그 치유책은 없는가.


첫째, 과학기술 행정의 컨트롤 타워 기능이 약화됐다. 돌이켜보면, 노무현 정부 때는 과학기술부가 존재하면서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부와 과학기술부를 합쳐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를 만들면서 교육과 과학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였으나, 교육 중심 교과부로 전락하여 과학기술이 홀대된 바 있다. 이번 정부에서는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하는 창조경제를 국정철학으로 하고, 이를 전담하는 부서로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를 만들었다. 그러나 미래부가 단기 현안 과제가 많은 ICT에 매몰되다 보니, 장기적 과제를 주로 다루는 과학기술 행정은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미래부의 과학기술 담당 제1차관마저 과학기술 분야가 아닌 인물이 연속적으로 기용되면서 과학기술인들의 소외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현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는 반드시 성공해야 일자리 창출도 되고, 경제도 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창조경제는 ICT 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과학기술의 폭 넓은 진흥정책을 통하여 과학문화가 온 국민에게 확산되고, 이를 통해 수많은 과학적 아이디어들이 제안돼 창업으로 그리고 산업화로 이어져야 창조경제는 그 싹을 키울 수 있다.


둘째, 97년 말 IMF 외환위기 시절 정부 출연연구소(출연연)의 연구원 정년을 61세로 낮춘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65세로 정년이 환원되지 않고 있다. 출연연의 연구원들은 한참 일할 나이에 정년을 맞는 아쉬움도 있지만, “출연연에 들어갈 때는 ‘금덩이’, 나올 때는 ‘돌덩이’가 된다”는 지적에 심적인 상처를 입고 있다. 그 이유는 연구원들이 연구과제 수주와 성과평가에 허덕이는 ‘앵벌이’ 노릇을 하다 보니 장기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전문연구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연구의 자율성도 많이 훼손됐다. 최근에는 정년 연장 없이 임금 피크제를 강제로 도입해야 하는 상황까지 겹치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따라서 출연연 연구원들의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다. 출연연으로부터 놀라운 과학기술 혁신기술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셋째, 과학기술인이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이다. 이 예산이 올해에는 지난해 대비 0.2%만 증액됐다. 사실상 동결된 셈이다. 이런 정부 연구개발비의 동결은 91년 이후 25년 만의 일이다. 정부 총 지출 예산 중에서 연구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3년에 5%를 상회한 후 처음으로 올해에 4.9%로 하회하게 된 것이다. 이런 정부의 방침이 과학기술인의 눈에는 정부가 진정으로 과학기술 개발 투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며, 사기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현재 중국에는 가격 경쟁에서 밀리고 일본에는 기술과 품질에서 밀리는 ‘넛 크래커’ 신세가 심화되고 있다. 하지만 그 돌파구를 향한 비전이 보이고 있지 않아 과학기술인이 당혹해 하고 있다. .


과학기술인들의 사기를 진작하여 다시 신명 나게 일하게 만드는 것은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현 정부의 남은 2년 동안이라도 제2의 ‘과학기술 입국’을 선언하면서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고, 과학기술 컨트롤 타워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래부의 과학기술 행정기능을 강화하고, 과학기술심의회에 실질적인 범부처적 연구개발비 조정기능을 부여해야 한다. 청와대에 과학기술특보를 두어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출연연 연구원들의 65세 정년 환원도 하루 빨리 이뤄져 좀 더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여기에 정부 연구개발비를 정부 총지출 예산의 5% 이상을 유지한다면, 사기가 떨어진 과학기술인들을 깨워 다시 한번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박성현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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