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전영기의 시시각각

김정은 급소 찌른 박근혜

중앙일보

입력 2016.02.12 00:34

업데이트 2016.02.12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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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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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논설위원

김정은의 북한 통치 5년은 핵강국, 경제빈국, 국제고립 세 가지로 요약된다. 평양은 지금 4차 핵·미사일 실험의 승전 축포를 쏘고 있다. 김정은에게서 3대 세습 성공자, 그 득의의 표정이 읽힌다. 그런 김정은도 마냥 통 큰 허세를 부릴 수 없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개성공단 폐쇄는 벌침처럼 따끔하다. 여러 번 맞으면 정신이 산란하다. 염증이 혈관이라도 타고 올라가면 쓰러질 수 있다. 개성공단 폐쇄는 국가 연속성 차원에서 김대중·노무현 시대의 성과를 허무는 자기 부정의 측면이 있다. 우리 기업들의 비즈니스적 손실이 있기에 자해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거친 상대를 길들일 때 어느 정도 희생은 피할 수 없다.

개성공단 폐쇄, 북한 피해가 10배 커
다음 수순은 청와대의 김종인 초청

 고통과 파괴력의 크기로 따지면 김정은 쪽이 훨씬 심각할 것이다. 개성공단의 인건비 수입으로 김정은 쪽이 1년간 벌어들이는 돈은 약 1억 달러. 북한의 예산 규모는 70억 달러쯤으로 추정된다. 예산이 380조원인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 기업들을 위해 준비 중인 피해 보상금은 5000억원 정도라고 한다. (손해액)/(예산)을 재정 피해율이라고 이름 붙여 보자. 이 계산에 따르면 북한 피해율은 1.43%, 한국이 0.13%이다. 북한 재정이 감당할 피해 수준은 한국의 10배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국의) 북한과 경제적 격차는 40배 이상이다. (김정은이) 저런 식으로 주민생활을 돌보지 않으면서 핵이나 개발하고 장거리 미사일 쏜다고 하면 그 체제가 장기적으로 절대 유지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핵·미사일에선 약소국이지만 경제발전에서 북한보다 강한 나라인 게 얼마나 다행인가. 수십 배 센 경제 맷집 덕분에 한국의 대통령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해 싸움을 걸 수 있었던 것이다.

 김정은의 아픔은 또 있다. 공단에서 일하던 5만 명 이상 인민들이 느낄 허전함과 상실감이다. 이들은 개성 일대에 거주하며 평양 다음으로 부를 누려왔다. 이 신흥 중산층의 짭짤한 수입이 장마당으로 흘러가 북한의 밑바닥 경제를 뒷받침했다. 한때 월 600만 개의 초코파이가 암시장에 공급됐다. 이 루트를 따라 전해지는 서울의 공기가 신경 쓰여 북한 당국은 최근 이를 중단시켰다. 5만 명 중산층의 갑작스러운 대량 실직은 대량살상 무기로 정권을 유지해 온 김정은에게 심리적 부메랑으로 돌아갈 것이다.

 김정은은 2012년 집권 첫해 “다시는 우리 인민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고 큰소리 쳤다. 김정은의 통치는 허세를 찌르는 심리전에 취약하다. 역사적으로 전체주의의 공포 통치는 외부 공격이 아니라 내부의 자유주의에 감염돼 무너지곤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3년 전 3차 핵실험 때도 개성공단 싸움에서 김정은을 밀어붙였다. 김정은이 근로자 전원 철수로 협박하자 박 대통령은 기업주 전원 복귀로 대응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선 5개월, 김정은은 놀랐고 공단은 정상화됐다. 김정은은 미국의 제재도 중국의 압박도 없는데 왜 물러났을까. 1억 달러 현금과 5만 명 인민의 관리부담, 한국 정부의 일관된 자세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은 주변국의 도움 없이 김정은을 다뤘던 3년 전 개성공단의 경험이 생생할 것이다. 그가 김정은에게 걸었던 기술은 무엇인가. 의표를 찌르고, 아프게 건드리고, 말한 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선택은 북핵의 가장 큰 피해자인데도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미국·중국한테 훈수나 두자는 평론주의, 의존주의, 회피주의 정신구조에 경종을 울렸다.

 이제 김정은의 반격을 대비해야 한다. 중요한 건 국내의 정치적 단결이다. 박 대통령이 꼭 취해야 할 후속 조치가 있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와 안철수·천정배 국민의당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내밀한 상황 브리핑과 함께 초당적 협조를 구하는 일이다. 김종인 대표의 “소련이 핵이 없어서 와해됐나. 핵·경제 병진하면 북한체제는 궤멸할 것”이라는 발언은 박 대통령의 인식과 같다. 정치 지도자들의 한목소리는 김정은의 또 다른 급소 찌르기가 될 것이다.

전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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