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J Report] “고객님 그 종목 파시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주식을 사거나 펀드 가입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회사원 손모(33)씨. 연리 1% 중반의 시중은행 금리에 실망해 연 5%만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증권사에 투자상담을 받으러 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똑똑해진 스마트 자산관리 서비스

그러다 최근 지인으로부터 온라인으로도 투자 상담이 가능하다는 걸 듣고 지난 7일 삼성증권 홈페이지 ‘스마트 어드바이저’ 메뉴에 접속했다. ‘중수익’ 투자성향에 매월 투자금액은 30만원, 투자 기간을 5년으로 설정했다.

결과보기를 누르자 목표 금액이 2029만원으로 제시된 뒤 구체적인 포트폴리오가 나왔다. 회원가입 후 ‘상세구성 종목보기’를 클릭하자 실제 매수할 투자 상품도 나왔다.

기사 이미지

삼성증권 관계자는 “고객이 정한 금액만 투자하면 실제 포트폴리오대로 매수가 이뤄진다”며 “개인 프라이빗뱅커(PB)없이 투자가 가능하고 지속적으로 투자 관리도 해준다”고 말했다. 손씨는 소액으로 온라인 투자를 시작할지 고민 중이다.

금융투자업계에 ‘스마트 자산관리’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개인 자산을 자동으로 관리해 주는 서비스다.

온라인 설문으로 투자자의 성향을 파악한 뒤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투자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제시한다. 고객이 포트폴리오를 선택하고 투자를 실행한 뒤 시장 상황과 고객 의견을 반영해 수시로 포트폴리오를 자동 조정할 수 있다.

증권·은행을 비롯해 신생 핀테크(Fintech) 기업들이 관련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주식·펀드 투자를 몰랐던 개인들도 저렴한 금액에 자산관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기사 이미지

카카오톡을 통한 모바일 증권 거래 앱 ‘증권플러스’를 운영중인 기업 ‘두나무’는 최근 스마트폰으로 투자 일임형 업무를 할 수 있는 앱인 ‘맵(MAP)’을 선보였다.

맵은 라임자산운용 등 10여 개 운용사·자문사와 제휴해 고객 성향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제공한다. 개인 투자자가 운용사와 투자 포트폴리오를 선택하면 자산을 대신 운용해 준다.

최소 가입 금액이 500만원으로 낮고 수수료는 기존 투자 일임 서비스의 절반 수준인 약 1%다. 두나무는 수익률이 높은 투자자의 포트폴리오를 자동으로 복제해 거래하는 특허 기술인 ‘미러링’ 기법을 삼성증권에서 제공받아 서비스를 운영한다.

NH투자증권은 국내 금융업계 최초로 자체 개발한 ‘로보 어드바이저’ 서비스 ‘QV 로보 어카운트’를 출시했다. 최소 가입 금액이 250만원으로 기존의 자산관리 서비스보다 문턱이 훨씬 낮다. 일임형 서비스가 아니어서 수수료를 낼 필요도 없다. QV로보가 추천한 전략에 따라 운용하며 거래 중 매매수수료만 내면 된다.

아직 상장지수펀드(ETF) 3가지밖에 투자할 수 없지만 향후 투자 자산 종목을 늘려갈 방침이다. KB국민은행도 지난달 은행권에선 최초로 핀테크 업체 쿼터백과 손잡고 로보 어드바이저 자문형 신탁상품(쿼터백 R-1)을 출시했다.

매도·매수할 주식과 거래 타이밍을 알려주는 인공지능 서비스도 있다. 유안타증권의 홈트레이딩 서비스(HTS) ‘티레이더 2.0’은 매수·매도할 주식을 자동으로 알려준다. 일기예보 개념을 도입해 주가가 상승추세에 있으면 ‘햇빛’, 하락하면 ‘안개’로 표시한다. 특히 팔아야 할 종목을 골라 ‘매도 추천’ 리스트로 제공한다.

전진호 유안타증권 온라인 전략 본부장은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증권사 연구원과 달리 시장 상황이나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매도 종목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기준 유안타증권이 이 시스템으로 매도 추천한 종목은 약 150개다.

이렇듯 금융업계가 스마트 자산관리 분야에 집중하는 건 저금리 상황에 따라 투자에 목마른 개인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국내 투자자문·일임 시장은 2012년 말 74조원에서 지난해 121조원으로 성장했다. 기존의 자문·일임 서비스를 받는 고객들은 억대 자산을 가진 고액 투자자 위주였다.

하지만 스마트 자산관리가 활성화되면 250만~500만원대 소액 투자자도 스마트폰으로 비슷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기존 시스템과 달리 24시간 내내 고객이 자산 상황을 알고 투자 포트폴리오 수정도 가능하다.

증권사나 핀테크 업체들은 스마트 자산관리를 미래 먹거리로 주목한다. 스마트폰 기반이라 디지털 문화에 익숙하고 자산이 적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신규 고객을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영완 삼성증권 스마트사업부장은 “스마트 자산관리는 오프라인 인력이 필요치 않아 모바일로 소액 투자자와 투자자문사를 곧바로 연결할 수 있다”며 “관리 비용을 줄여 수수료와 최소 가입금액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증권은 지난해 12월 ‘스마트사업부’를 자산관리 본부에서 독립부서로 만들었다. 빅데이터 알고리즘 시스템인 ‘투자 성과 검증 시스템’이란 특허도 출원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한 로보어드바이저 일임형랩과 사모펀드 서비스를 상반기 중에 출시할 예정이다.

아직 보완할 점도 많다. 현재 투자일임 서비스는 아직 오프라인 대면 계약만 가능하다. 스마트폰으로 투자자문을 받는 서비스의 경우, 자산관리사가 오프라인 상에서 한 번 이상 투자자와 만나 계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나무의 MAP서비스도 온라인 계약을 할 수 없다.

두나무에 법률자문을 하는 법무법인 세종의 조정희 변호사는 “계약서류·서면자료를 전자문서로 전송하면 온라인에서도 충분히 신뢰를 담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규제 완화 차원에서 관련 법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최창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스마트 자산관리 기능은 과거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급작스런 투자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처할지 의문”이라며 “지속적으로 보완해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