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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깝다 아까워"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아이구, 요새는 왜 아가씨 환자들이 많아지고 있는지 모르겠네.

어제 저녁 회진 때 수술할 내용에 대하여 미리 설명이 되어 있지만 수술대에서 절개선을 디자인 하면서 환자에게 다시 얘기해준다.

오늘 수술할 갑상선암의 크기는 0.9cm밖에 안되지만 위치가 오른 쪽 날개 뒷쪽 피막을 침범하고 있고, 바로 그 근처 중앙경부림프절이 커져 있어 수술을 안할 수가 없게 되었어요.

수술은 오른쪽 날개만 떼는 반절제를 계획하고 있는데 차트에 그려져 있는 요 림프절이 암전이로 밝혀지면 전절제로 돌아설 수 도 있어요. 반절제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나이는 30세라 하지만 아직은 앳띤 미혼의 아가씨다. 정말로 반절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수술을 시작한다.

수술은 우선 오른쪽 중앙경부 림프절들을 떼어서 긴급조직검사실로 보내고 오른쪽 갑상선 날개를 떼는 작업을 한다.

"어이구야, 갑상선이 왜 이래 딴딴하게 굳어 있노? 만성갑상선염이 심한가 보지? 그러면 림프절 커진 것도 이 만성갑상선염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반절제 가능성이 높아 지겠는데...."

그래서 일단 오른쪽 갑상선날개만을 떼는 반절제를 하고 창상을 봉합한 후 긴급조직검사결과를 기다리기로 한다. 수술 조수인 닥터 김에게 말한다.

"아무래도 긴급조직검사를 보낸 림프절들이 전이보다는 반응성 비대(reactive hyperplasia)일 가능성이 더 높겠지? 마취를 깨울까?""

"글쎄요, 그래도 결과를 기다려보고 결정하시지요"

수술창상을 완전 봉합하고 2~30분을 기다리니까 검사결과가 컴터에 올라 온다. "림프절 전이 있음, 9개중 7개에 전이가 있음. 큰 것은 0.5cm까지 됨"

"뭐야 이거, 예상이 완전 빗나갔잖아? 전이가 여러개 있다니...? 다시 열고 전절제술을 해야 되잖아.

아~, 아깝다 아까워....이게 무슨 일이야..."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창상을 다시 열고 남아있는 왼쪽 갑상선을 다 떼는 완결갑상선절제술(completion thyroidectomy)을 한다.

수술을 끝내고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 나는 동안 수술실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그동안의 검사데이터와 찍어둔 영상들을 복습해 본다.

그런데 말이다. 타병원에서 찍은 폐CT 영상에서 흐미하지만 전이가 의심되는 아주 작은 결절이 오른쪽 폐중간과 왼쪽 폐 윗쪽에 한개씩 보이지 않는가. 영상의학과 판독에는 3~6개월후에 다시 찍어 경과를 봐야 무어라고 얘기할 수 있다고 해 놓았다.

말하자면 현재로서는 잘 모르겠다는 것인데 오늘 예상치 못한 림프절 전이가 여러개 있는 것을 보아그냥 괜찮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차피 전이이든 아니든 수술후 고용량 방사성요드치료를 해야할 것이니까 그때 폐에 새카맣게 흡착이 되면 전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될 것이다.

그런데 혈청 Tg(thyroglobulin)나 항Tg항체가 모두 낮은 수치로 나와 있으니까 혹시 폐전이는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어쨋든 이 아가씨 환자는 좀 빡센 보조치료하면 젊은 연령이니까 치료효과는 좋을 것이라고 예측이 된다.

환자를 마취에서 깨우고 나서 마취과 여교수와 얘기를 나눈다.

"이런 환자를 보면 8인의사 연대 사람들은 뭐라고 그럴까? 그 친구들은 증상이 없거나 만져지지 않는 갑상선결절은 진단도 치료도 하지 말라고 했잖아.

이 환자는 그냥 건강검진에서 발견된 건데. 건강 검진 안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무책임한 친구들이라 안할 수 없지.

작년 1년동안 35% 수술율이 줄어들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으니.......

35% 안에 수술을 못해서 생명이 위로워 질 수 있는 환자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할까?."

"그 사람들은 진짜로 과잉진단과 과잉치료가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도 암이 있나 없나 진단은 해야 할 거 아냐? 이 환자를 보면 그런 생각이 안들어요?"

병실에 들리니까 환자의 어머니가 간호를 하고 있다. 웃는 얼굴로 의료진을 맞이하는 엄마와 딸이 어쩌면 저렇게 닮았을까....참 착한 분위기의 모녀다.

전절제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과 고용량 방사성요드치료에 대하여 설명을 해준다.

"아까 수술전에 보여준 커진 림프절이 모두 전이 때문이었어요. 그래도 께끗이 다 제거했으니까 너무 걱정 안해도 될 겁니다.

정말로 반절제를 해주고 싶었는데 아깝게 되었어요. 몇번이나 아깝다 아깝다 했지요.

근데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되었던 쪼끄만 폐결절에 대해서는 좀더 정밀검사를 할 것입니다.

폐 결절이 어떤 것이든 치료는 원래 예정한대로 고용량 방사성요드치료로 할 것입니다"

"그렇찮아도 교수님 설명을 기다렸어요"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 병이 커지고 수술이 커진 바람에 안스러운 마음이 들어 환자의 손을 잡아주며 말해준다.

"너무 걱정 안해도 돼요. 경과가 좋을 것이니까......"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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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기자 sohopeacock@naver.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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