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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보안이 뚫렸는데 보신만 하는 인천공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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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함종선 기자 중앙일보 건설부동산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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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종선
경제부문 기자

대한민국 제1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은 ‘작은 정부’라고도 불린다. 외교부·법무부·경찰 등 20여 개 정부부처가 인천공항에 사무실을 두고 있어서다.

그런데 이 작은 정부가 연초부터 시끄럽다. 수하물 처리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 비행기 탑승객 5200여 명이 몸 따로 짐 따로 비행기를 탄 수하물 대란이 일어난 데 이어 외국인 환승객 3명에게 인천공항의 보안시스템이 뚫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환승객 밀입국 사고는 8일 동안 두 차례나 일어났다.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따지는 과정에서 작은 정부 내 각 부처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네탓파’와 조용히 사고가 수습되기를 기다리는 듯한 ‘뒷짐파’다. ‘네탓파’ 중 하나는 출입국관리를 맡고 있는 법무부다. 법무부의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자신들이 극장으로 치면 표를 받는 역할을 할 뿐이며, 그 이후의 관리 책임은 다른 부처에 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중국인 부부가 첫 번째 밀입국 통로로 이용한 3번 출국장의 현황을 보면 법무부의 얘기가 옹색해진다. 3번 출국장은 오후 11시 업무 종료 후에 출입문을 잠가야 한다. 하지만 심야에 근무하는 법무부 직원들이 3번 출국장 안에 있는 휴게실의 출입문을 업무 시간 이후에도 열어놨고, 중국인은 그 출입문을 구멍 삼아 밀입국했다.

수하물 대란 때는 인천공항공사가 어이없는 ‘네 탓’을 했다. 공사는 사고 초기에 “ 중국인 관광객이 많았고, 보따리짐 같은 비규격 수하물이 많아 시스템이 고장났다”고 발표했다. 중국 관광객 탓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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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정작 보안을 책임지는 부처는 뒷짐을 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국가정보원이다. 국정원은 인천공항 보안의 총 책임부처다. 인천공항 보안대책협의회의 의장기관이며, 공항의 보안요원을 뽑을 때도 국정원이 신원을 조회한다. 그런데 이번 사고와 관련, 국정원은 묵묵부답이다.

공기업인 인천공항공사를 관리 감독하는 서울지방항공청도 숨죽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국토교통부 산하기관인 서울항공청에는 인천공항의 보안 상태를 점검하고 관리하는 부서가 있다.

부처들이 이렇게 면피에 급급하거나 침묵하고 있지만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를 통합·관리하는 컨트롤타워는 없다. 공항의 핵심인 CIQ(세관·출입국관리·검역) 구역에 대한 공조도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부처의 입장만 따지는 부처이기주의가 ‘작은 정부’에도 만연해 있는 것이다.

공항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첫 이미지로 각인되며, 공항의 효율성은 국가경쟁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10년 연속 세계 최고 공항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경쟁력이 높았던 인천공항이 부처이기주의와 책임회피라는 난치병에 감염된 것 같아 안타깝다.

함종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