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마이크 놔라, 명패 놔라…창조경제 현장서 의전만 챙긴 대통령자문위원

중앙일보

입력 2016.02.02 00:01

업데이트 2016.02.02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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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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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 경제부문 기자

지난달 29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영하의 날씨에 본부장을 포함한 직원 여러 명이 1층 출입구에 나와 누군가를 기다리고 이었다. 이윽고 대형 리무진 버스 한 대가 도착했고, 직원들은 우르르 버스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린 이들은 대통령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소속 자문·전문위원 20여 명. 자문회의는 대통령에게 과학기술 정책에 관한 의견과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위한 기구다. 박근혜 대통령이 의장을 맡고 학계·산업계 주요 인사로 구성됐다. 위원들은 창조경제의 성과를 점검하고, 벤처 기업인들의 고충을 현장에서 듣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그런데 자문위원들은 유독 의전에 신경을 썼다. 자문회의는 ‘마중 의전’을 포함해 상세한 의전 지침을 센터에 전달했다. ‘위원들이 앉는 곳에는 이름이 적힌 명패가 놓일 것’, ‘회의실에는 위원 자리마다 마이크가 있어야 할 것’ 등도 포함됐다. 건물의 5층만 쓰는 센터 측은 자문위원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10층 회의실을 긴급히 빌려야 했다.

자문위원들의 의전 중시 태도는 현장방문에서도 이어졌다. 방문하는 곳마다 기업 관계자들은 버스 앞으로 마중을 나왔고, 앉는 곳에는 어김없이 명패가 놓였다.

이런 ‘행차’에서 현장의 고충이 제대로 수렴될 리 없었다. 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한 바이오업체 관계자가 “식약처 담당자가 자주 바뀌어서 전문성 축적이 안되고 업무 진행이 더디다”고 고충을 토로했지만 자문위원들 중 누구도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중소 게임업체 대표는 대형 게임업체와의 경쟁에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했다가 한 자문위원으로부터 “제대로 경쟁하면 이길 수는 있느냐”는 핀잔만 들었다.

자문위원들의 태도는 같은 날 현장을 찾은 외국인 인사들의 행보와 대비된다. 이날 유럽에서 온 산업계 인사 10여 명은 5층 로비에 있는 간이 의자에 앉아 회사 소개를 받았다.

그리고는 입주한 스타트업들을 꼼꼼히 둘러봤다. 이 정부가 창조경제의 성과를 강조하면서 전국 17곳 창조경제혁신센터에는 외국인 방문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경기센터에만 지난해 3월 개소 이후 100여 개국, 800여 명의 외국인들이 방문했다. 대부분 산업이나 과학기술계 장·차관들이지만 명패나 자리배치를 시시콜콜 요구한 방문객은 없었다.

지난해 11월 방문한 리커창 중국 총리 측의 경우 “중국어 환영 현수막이나 중국 국기를 준비하지 말라”고 당부해올 정도였다. 불필요한 의전으로 직원들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뜻도 밝혔다.

중국 총리가 이럴진대 왜 우리의 리더들은 이렇게 다른걸까. ‘창조경제’를 그들 스스로 ‘창조’했기 때문에 대접받고, 명령하고, 지시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만들어진’ 창조경제인 까닭에 창조경제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창조경제는 특정 정부의 구호가 아니라 꼭 이뤄내야만 하는 가치다. ‘위에서부터’ 시작됐어도 잘 만들어 가면 우리 식의 창조경제도 가능하다.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실제로 벤처 창업이 느는 등 성과도 있다.

이렇게 쑥쑥 성장해 창조경제가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만 한다. 그래서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목격한 일련의 일도 단순 해프닝이었길 기대해본다. 고충 경청보다 의전, 문제 해결보다 질타를 우선하는 리더들로는 창조경제가 제대로 꽃 피울 수 없기에.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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