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한영애 4년 만에 새 앨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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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눈물’ ‘선창’ ‘황성옛터’ ‘타향살이’‘굳세어라 금순아’….

30대 이상이라면 굳이 배우지 않았어도 가사 몇 마디쯤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들이다. 부모 혹은 조부모 세대가 흔히 불렀던 노래고, 우리 삶에 드리워진 그들의 그림자 만큼이나 가깝고 친근한 곡들이다.

한영애가 이 노래들을 불렀다면? ‘건널 수 없는 강’ ‘누구 없소?’ ‘코뿔소’ 등 블루스, 록이란 이국적 색채가 강한 노래를 독특한 개성으로 부르던 그가? 그런 그녀가 오는 7일 선 보일 새 음반 ‘비하인드 타임 1925-1953’ 에서 ‘쿵짝 쿵짝’하는 단순한 박자의 전통 가요와 슬며시 손을 잡았다.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릴 일이다. 하지만 여기엔 50년이 넘는 시간을 거슬러 보내는 그의 새로운 시선이 담겨 있다.

*** 다시 발견한 트로트

"1999년 발표한 5집 앨범에 옛 가요 '봄날은 간다'를 리메이크해 수록했었죠. 향수 때문인지 이 노래를 불러달라는 요청이 유난히 많았어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문득 우리 가요사를 들여다보니 이 노래들이 새삼 따스하게 다가오더군요."

그의 설명이다.

'한국대중가요사'의 저자인 이영미(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책임연구원)씨는 한씨의 시도를 가리켜 "20여년간 이국적인 양식에 젖은 한 가수가 오랫동안 무시했던 옛 대중가요와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한 것"이라며 치켜세웠다.

이씨는 "40대야말로 1970년 청년문화.포크송 세대로, 어떻게 보면 가장 반(反)트로트적인 태도를 취했던 이들"이라며 "그러나 이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트로트는 지금의 대중가요가 도저히 만들어내지 못한 어떤 삶의 느낌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다듬어낸 노래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는 것이다.

이번 음반에는 최초의 대중가요라 불리는'강남달'(원제 '낙화유수')을 비롯해 최초의 트로트 계열 히트곡인 '황성옛터'(원제 '황성의 적'), 50년 만에 처음으로 약보에 근거해 2절까지 완벽하게 녹음된 '부용산', 동요 '따오기'등 13곡이 수록됐다.

*** 새로운 해석, 시간의 순환

"익히 아는 곡이라 편곡만 끝나면 부르기는 쉬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그게 다 제 자만심이었어요. 간결하지만 가슴 찡하게 만드는 노래에서 선배들의 올곧은 음악정신이 느껴지더군요. 어떻게 보면 무력함과 자괴감, 탄식의 눈물이 주류지만 그게 삶의 절실함,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한씨는 그러나 "이들 노래를 트로트가 아닌 그냥 '음악'으로 접근하고 싶었다"면서 "옛날 노래를 현재의 정서로 행복하게 부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원래의 멜로디를 다치지 않으면서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하려는 시도를 한 것. '목포의 눈물'이나 '타향살이'는 심심하다 여겨질 정도로 원곡을 그대로 살렸는가 하면, 흥겨운 스카 리듬으로 변주하기도 하고('선창'), 버블 시스터스('오동나무'), 어어부 프로젝트의 백현진('강남달') 등 후배 가수들도 참여시켜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여기에 편곡과 프로듀싱을 맡은 '복숭아' (달파란.장영규.방준석.이병훈 등 네명의 음악인들로 구성된 창작 집단)의 남다른 감각도 한몫 했다.

한씨는 "이번 작업을 통해 오랜 세월 불리는 곡들이 왜 명곡인지를 새삼 느꼈다"면서 "옛 노래를 부르며 그 선배들의 시간을 지금 내가 살고 있고, 내 시간을 그 선배들이 살다갔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시간의 순환을 경험한 느낌"이라고 했다.

11~12일 성균관대 새천년홀(02-3141-2706)에서 열리는 콘서트에서 이번 음반에 수록된 옛 노래들을 들려준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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