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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 시나리오···재판부, 패터슨 사건 어떻게 풀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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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아서 패터슨(36)이 지난해 9월 23일 인천공항을 통해 송환되는 모습. 그는 담당검사가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지난 1999년 8월 미국으로 도주했다가 16년만에 송환됐다.

1997년 4월 3일 밤 이태원 ‘버거킹’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2명의 미국인이 당시 22살이던 대학생 조중필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이태원 살인사건’. 당시 조씨를 따라 화장실에 들어간 2명의 미국인 에드워드 리와 아더 패터슨은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사건은 19년간 진범을 찾지 못했다. 29일 재판부는 어떻게 아더 패터슨(36)을 진범으로 지목했을까.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판사 심규홍)는 6가지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기존 진술에서 어긋나는 시나리오는 배제하는 방식으로 범인을 찾았다.

재판부의 설명과정은 이렇다. 먼저 에드워드 리가 조씨를 찌르고 패터슨이 이걸 지켜봤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패터슨 입장에선 ▶리가 조씨를 찌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경우 ▶찌를 것을 예상하지 못하는 경우로 나눠볼 수 있다. 재판부는 이 두가지 가정 모두 말이 안된다고 봤다. 진술을 종합해 보면 리가 패터슨에게 ”찔러보라“고 권하고→패터슨이 이걸 거절한 뒤→다시 리가 조씨를 찌르는 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없다는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또 범행 이후 리가 또 다른 친구에게 ”우리가 찔렀다“라고 과시한 걸로 봤을 때 패터슨이 리가 찌를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고도 할 수 없다.

두 사람이 칼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공격했다면 ▶서로 찌를 것으로 예상하는 경우 ▶찌를 것을 예상하지 못하는 경우로 나눠볼 수 있는데 재판부는 이 두가지 가정 역시 모두 배제했다. 좁은 범행 장소에서 범행도구는 하나 뿐이라 칼을 주고 받으며 위치를 바꿔 조씨를 공격하는게 어렵다는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또 조씨에게는 방어흔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그 정도로 짧은 시간에 아홉 차례에 걸쳐 공격이 이뤄진 걸로 봤을 때 두 사람이 칼을 주고 받지는 않았을 것으로 재판부는 봤다.

그러면 남은 건 패터슨이 찌르고 리가 이걸 목격한 경우인데 재판부는 이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근접 공격을 한 가해자에게 다량을 피가 묻을 수 밖에 없는데 재판부는 패터슨의 양손과 상ㆍ하의에 묻은 다량의 피를 결정적인 증거로 인정했다. 또 패터슨의 진술에는 신빙성이 부족한 방면, 리의 진술이 비교적 일관된 점을 참고했다.

또 재판부는 리는 패터슨이 찌르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는 가정도 배제해 리가 이태원 살인사건의 공범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함께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왔고, 범행 이후 ”우리가 찔렀다“라고 말한 리의 진술을 인정한 거다. 재판부는 “리는 패터슨이 피해자를 칼로 찔러 사망케 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라면서 “그는 패터슨을 부추긴 뒤 망을 보거나 피해자의 반항을 제압하기 위해 따라갔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가 리를 이번 사건의 공범으로 판단했지만 ‘일사부재리의 원칙’(이미 심판을 거친 사건에 대해선 다시 심판할 수 없다는 뜻)에 따라 리에 대한 처벌은 불가능하다. 검찰이 패터슨과 리를 공범으로 모두 기소한 게 아니라 리만 살인죄로 기소했는데, 리는 1·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도 1998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정종문 기자 perso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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