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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조백일장] 1월 수상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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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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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심사평

차 바퀴에 삶의 현실 비유
오래 품들인 공력 느껴져

정민석의 ‘바퀴’를 새해 첫 장원작으로 올린다. ‘육신의 버팀대’인 자동차 ‘바퀴’에 바람을 채우고 출근길에 나서는 가장의 내면을 그린 작품으로 오랫동안 품들인 공력과 솜씨가 느껴진다.

‘실직’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안은 채, 안간힘을 쓰며 ‘공기압을 재’거나 ‘공회전’에 애를 태우고 ‘기어 단을 올리’며 어떻게든 위기를 빠져나가려는 화자의 모습에서는, 삶의 충전을 통해 희망과 의지를 놓지 않는 튼튼한 내성이 읽혀진다.

‘바람 빠진 이력서’를 들고 바퀴만큼 ‘탱탱해질’ 내일을 기약하며 ‘애타는 신호등의 눈짓’을 향해 굴러가지 않을 수 없는 이 시대 가장들의 행렬이 주는 역설의 울림이 깊고 뜨겁다.

자동차 바퀴에 삶의 현실을 비유하면서 일관성 있게 주제를 향해 집중하는 치열한 힘도 만만치 않다. ‘우수를 기다리며’ 또한 당선작을 밀어준 가작이다.

차상으로 제인자의 ‘기울기’를 선한다. 풋것 같은 욕망을 몇 차례씩 솎아내며 인고의 세월을 견딘 끝에라야 충일한 생명의 가지를 아름드리 휘게 할 수 있다는, 자성과 통찰을 내포한 시로 시각적 이미지가 돋보인다.

비움의 미학을 엄혹한 ‘생존방식’으로 연결시킨 발상도 좋다. ‘꽃부리, 휘청’할 정도로 ‘저울추’처럼 매달린 열매들 따라 포물선을 그리는 가지의 기울기도 그윽한 탄력을 받는, 제목의 ‘기울기’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차하로 뽑은 이종현의 ‘종이컵’은 순간의 장면을 선명한 감각으로 잡아챈 솜씨가 돋보인다. ‘휴지통’ 속으로 ‘툭!’ 떨어지는 종이컵의 무게가 비유적 효과를 동반하면서, 일용직 노동자로 보이는 ‘김씨’의 고단한 노역과 일상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형상화된 작품이다.

젊은 패기가 느껴졌던 서희정의 ‘이면지’와 함께 박한규의 ‘거미’, 김인숙의 ‘갈란투스 눈물’이 끝까지 거론되었음을 밝힌다.

심사위원 : 염창권·박명숙(대표집필 박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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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첫 달인 정월이다. 정월(正月)은 바르고 반듯하게 한 해의 첫머리를 세운다는 달이다. 시인은 연필을 곱게 깎아 백지 위에 써본다. 그러나 날카롭게 깎인 연필로 쓴 글씨가 끝이 너무 뾰쭉해서 섬뜩하게 느껴진 시인은 뭉툭한 연필심으로 ‘마음’이라 써보고 깨닫는다.

마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인간 세상의 모든 일을 인간의 마음이 들어서 짓는다고 하고 데카르트는 마음을 육체 안에서 움직이는 활동성의 유일한 원천으로 보았다.

그토록 수많은 동서양의 철학자와 종교인이 찾아 헤매어온 그 불가시의 형이상학적 존재인 마음을 그러나 이 시인은 뭉툭한 연필심으로 ‘마음’이라고 써보는 것만으로 단번에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실체로 만들어버린다.

날카롭고 뾰쭉함 속에 혼자 도사리고 있던 마음은 ‘쓰면 쓸수록 연필심이 둥글어지’ 듯 뭉툭함과 둥글둥글함으로 열린 밖으로 나와 ‘백지 위를 구르’고 ‘아이들 신나게 차는 공처럼 대굴거린다’. ‘연필의 마음인 연필심’을 통해 시인이 펼쳐놓은 깨달음의 눈부신 백지.

그 위에서 그 둥근 마음을 따라 잡으려 함께 대굴거리다 보면 아, 우리도 어느새 날카롭게 깎인 뾰쭉한 연필심이 아닌 뭉툭하게 둥글어진 연필심이 되어 누구에게나 자신의 마음을 신나게 굴려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박권숙 시조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달 말 발표합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게 중앙시조백일장 연말 장원전 응모자격을 줍니다. 우편(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100-814) 또는 e메일(kim.soojoung@joongang.co.kr)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02-751-5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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