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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회 세워놓고 집안 싸움으로 으르렁거리는 여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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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권 내 친박·비박 간 계파 갈등에 다시 불이 붙었다. 비정상적으로 꼬인 당·청 관계도 빨간불이다.

여당 대표, 느닷없이 대통령의 선진화법 책임론
선진화법 개정에 앞장섰던 사람들 사과는 필요
집권당 대표도 국정 무한책임 지는 당사자 아닌가

유승민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뽑혀 나간 게 반년 전이다. 그 탓에 전국의 총선 현장은 지금 배신자와 진박 싸움이 한창이다. 여당은 공천관리위원장 인선을 놓고도 두 계파가 맞서 있다. 이 와중에 집권당 대표가 대통령을 권력자로 바꿔 부르며 국회선진화법 책임론을 꺼내들고, 불통을 거론했다. 또 주변 인사를 완장 부대라고 공격했다. 겉모습은 익숙한 자중지란이다. 하지만 이번엔 철저하게 몸을 낮추던 김무성 대표의 선공이어서 속 내용이 다르다.

연이틀 계속된 김 대표의 권력자 발언에 친박계는 어제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서청원 최고위원 등이 “김 대표가 새누리당 권력자”라며 “김 대표 주변에도 완장 찬 사람들이 매일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있다”고 맞섰다.

앞서 김 대표는 선진화법 입법 과정을 거론하며 “당시 권력자가 찬성으로 돌아서자 반대하던 의원들이 모두 찬성으로 돌아섰다”고 주장했다. 당시 새누리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였다. 언론 인터뷰에선 “권력 주변의 수준 낮은 사람들이 완장을 차려 한다”고 친박계를 겨냥했다. 다음날엔 “과거엔 공천권이 당의 소수 권력자에 의해 밀실에서 좌지우지돼 왔다”고 이어갔다.

김 대표의 언급엔 당 공천에 청와대가 간섭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는 듯하다. 원칙론적으로 맞는 말인데 김 대표가 관철해낼지는 의문이다. 그는 당 대표 1년 반 동안 박 대통령의 가이드 라인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유승민 축출’ 때도 그랬다. 공천만은 다른 문제인지는 지켜볼 대목이다. 더구나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가 이런 식으로 느닷없이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는다. 집권당 대표는 당·청 관계, 당내 갈등을 조정해야 할 당사자다.

그러나 겉 형식이 아닌 그가 언급한 속 내용은 일리가 있다. 박 대통령은 선진화법과 관련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동물국회 아니면 식물국회가 될 수밖에 없는 수준밖에 안 되는가 이거죠”란 유체이탈 화법으로 넘어갔다. 여권은 악법으로 규정하고 개정에 나선 상황이다. 설득력을 갖추려면 입법에 앞장섰던 사람들의 자기 반성과 사과 정도는 있어야 한다.

불통 주장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난해 9월 정기국회가 열린 뒤 쟁점 법안은 교착 상태다. 박 대통령은 이 기간에 여야 지도부를 단지 두 차례 만났다. 그동안 국회는 21차례나 비판했다. 오죽하면 여당 대표가 “만나서 얘기하자는 뜻을 여러 번 전했지만 안 되더라”고 했겠는가.

총선이 불과 두 달 남짓 앞이다. 19대 국회엔 처리해야 할 국정 현안이 수북하다. 국회의 입법 마비가 선진화법 탓만도 아니다. 야당 분열로 인한 국정 외면도 힘든데 여권마저 갈라져 으르렁댄다면 국정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여권 지도부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