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는 왜 주식 팔라는 말을 안 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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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자협회는 지난해 5월 ‘증권사별 투자의견 비율 공시제도’를 도입했다. 투자자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주식을 사라는 보고서만 쓰지 말고 팔라는 보고서도 쓰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국내 증권사 32곳 중 20곳은 매도 의견 보고서를 단 한 개도 낸 적이 없다. 27일 금투협에 따르면 매도 의견이 0%인 증권사에는 대우증권ㆍ삼성증권ㆍ신한금융투자 등 대형사들도 포함됐다. NH투자증권(1.1%), 미래에셋증권(1.3%), 대신증권(1.1%), 현대증권(0.3%)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비해 골드만삭스(15.5%), 노무라(8.6%), 모건스탠리(19.0%) 등 외국계 증권사들은 적극적으로 매도 의견을 냈다.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제도 시행 다음날인 작년 5월30일부터 12월 31일까지 국내 증권사가 발간한 보고서 1만8084건 중 매도 의견은 6건(0.03%), 비중 축소 의견은 76건(0.42%)에 불과했다. 반면 매수 의견은 1만4375건(79.49%), 강력 매수 의견은 114건(0.63%)로 나타났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애널리스트들이 투자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할 수 없는 지금과 같은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이런 관행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널리스트가 팔라는 보고서를 내면 해당 기업과 관계가 소원해지고, 기관 투자가는 자기가 갖고 있는 종목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면 거래 증권사를 옮기겠다는 식으로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황영기 금투협회장은 “투자의견 공시는 증권사들의 평판과 고객 신뢰에 대한 객관적 지표가 될 수 있는 만큼 자율적인 개선 노력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며 “다만 자본시장 환경과 문화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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