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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약해진 특수수사 ‘체력 보강’… 표적수사 우려 여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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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호 10면

포스코그룹 비리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7월 3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수사관들이 포스코건설의 하도급업체인 동양종합건설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를 차량에 옮겨 싣고 있다. [중앙포토]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국무총리, 김수남 검찰총장은 최근 일치된 목소리로 부패척결을 강조했다. 그에 맞춰 검찰엔 총장 직속의 부패범죄특별수사단(부패수사단)이 출범했다. 총장-반부패부장-수사단장의 지휘 체계는 사실상 총장이 직접 지휘한다는 점에서 총장과 중수부장으로 이어지는 과거 대검 중앙수사부 체제와 닮은 모습이다. 3년 전 폐지됐던 대검 중수부가 문패와 규모만 바꿔 돌아온 셈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한편에선 중수부 폐지로 약해진 검찰 특별수사가 부활할 것이란 기대가 있는 반면 다른 편에선 검찰 수사의 공정성, 표적 수사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2009년 대검 중수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했다. 측근 비리로 시작해 노 전 대통령의 가족에 이르는 전방위 수사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노 전 대통령 죽이기란 말과 함께 ‘하명 표적 수사’의 전형이라는 가시 돋친 비판도 있었다. 그해 5월 검찰 수사를 받던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여론의 화살은 대검 중수부로 집중됐다. 중수부 폐지론이 고개를 들었다. 정치권에 대한 수사 때마다 폐지론이 단골 메뉴처럼 등장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수사에 여론은 등을 돌렸다. 이인규 중수부장과 임채진 검찰총장이 잇따라 검찰을 떠났다.


임 총장의 뒤를 이은 김준규 총장은 중수부의 직접 수사를 1년간 중지시켰다. 김 전 총장은 “당시 여론은 중수부 폐지가 중론이었다. 하지만 검찰이 중수부를 없애면 제대로 된 수사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일시적인 수사 중단과 함께 체제 개편을 준비시켰다”고 설명했다.

특수부 검사들 주축 ‘검란’ 일어나기도3년 뒤인 2012년 11월 22일 당시 한상대 검찰총장은 “대검 중수부 폐지를 논의 중”이라고 기자들에게 알렸다. 현직 총장이 중수부 폐지를 말한 건 처음이었다. 김광준 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비리 사건, 동부지검 검사 성추문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직후였다. 검찰 내부 비리로 여론의 뭇매를 맞자 대선을 한 달 앞둔 상황에서 총장이 ‘검찰 개혁’의 이름으로 중수부 폐지를 추진한 것이다. 비특수부 출신인 한 총장은 자존심 강하고 독한 특수통 검사들을 ‘사파리 안의 맹수’로 비유했다. 그러자 이른바 ‘검란(檢亂)’이 일어났다. 한 총장은 대검 내부에서조차 총장 용퇴를 건의하자 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검란은 또 다른 파장을 불렀다. 중수부를 대선주자들의 표적으로 만든 것이다. 2013년 4월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첫 고위 검사 인사에서 법무부는 대검 중수부장을 발령내지 않았다. 그달 23일에는 중수부 간판 하강식도 열렸다.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과 오세인 연구위원, 이동열 특별수사개편 추진 팀장과 검사, 수사관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이동열 팀장은 “드높은 자부심 반대편에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자라고 있었고 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검찰에 대한 불신 제대로 못 봐”중수부 간판을 떼고 검찰은 ‘국민의 검찰’이 되겠다고 발표했다. 첫 단추로 검찰에 비판적 시각을 가진 인사들을 중심으로 검찰개혁위원회(검개위)를 출범시켰다. 정종섭 당시 서울대 로스쿨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태훈 고려대 로스쿨 교수, 나승철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이광범 엘케이비엔파트너스 대표변호사 등이 참여했다. 검찰은 또 ‘특별수사체계 개편 방안’을 만들었다.


중앙SUNDAY가 최근 입수한 특별수사체계 개편 방안은 중수부 대신 전국의 특별수사를 지휘할 대검 내 부서(현 대검 반부패부) 신설과 함께 국민이 참여하는 특별수사 감시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일반인을 참여시킨 특별수사심의위원회 설치와 특별수사지침 마련 등이 핵심 골자였다. 수사 밀행성을 이유로 피의자 조사 때 변호인 입회도 불편해하던 검찰의 입장에선 큰 변화였다. 총장이 직접 임명하는 특임검사의 수사 대상을 검찰 내부 비리에서 일반 사건까지 확대해 수사 공정성 시비를 줄이기로 했다. 검찰이 스스로 개혁에 나선 모습은 검개위원들의 신뢰를 끌어냈다. 오영근(한양대 로스쿨 교수) 전 위원은 “굉장한 의지를 갖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며 “겸손해진 모습을 봤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나승철 변호사 역시 “검찰 개혁의 의지가 확고했고 국민 참여안도 매우 참신했다”며 “변할 수 있겠구나라는 믿음을 가졌었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이 추진하겠다던 개혁방안은 채동욱 전 총장이 혼외자 사건으로 퇴임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1년 만에 흐지부지됐다. 2013년 12월 김진태 총장이 취임하며 환부를 도려내는 수사가 강조됐다. 대검은 이듬해 2월 사회구조적 내재적 비리 대응 방안을 만들어 검찰개혁위원들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스스로 내놓은 개혁안인 특별수사심의위원회나 수사평가위원회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특별수사지휘지침도 일선 검사들은 제정 여부조차 알지 못했다. 특수부의 한 검사는 “지침과 평가위원회 등에 대한 얘기를 들은 바가 없으며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검개위는 두 달 뒤 활동을 종료했다. 검찰은 검개위 2기를 출범시켜 검찰개혁을 이어가겠다고 했지만 지난해 1월에야 이름을 바꾼 미래발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위원 9인 중 대부분은 검찰을 잘 알지 못하는 인물로 채워졌다.


검찰의 한 고위 인사는 “돌이켜보면 중수부 폐지 직후보다 개혁 의지가 많이 퇴색했고 당시 준비했던 내용들을 결과적으로 시행하지 못해 중수부 폐지로 이어진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무렵인 2014년 1월 검찰에 포스코 비리 첩보가 접수됐다. 당시 김진태 총장은 “(포스코와 관련해) ○○○, ○○○ 등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다. 검찰이 이런 수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경유착 의혹이 강했던 포스코를 제대로 수사해보라는 지시였다. 그해 3월에는 국세청이 포스코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하며 수사가 초읽기에 들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4월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새로 생긴 특수수사 지휘부서인 대검 반부패부는 역량의 대부분을 유병언 뒤쫓기와 ‘해(海)피아’ 수사에 쏟았다. 결국 포스코 수사는 1년이 지난 지난해 3월이 돼서야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공개수사가 착수됐다. 수사는 무려 8개월간 이어졌다. 총장이 이름까지 찍어준 수사였지만 특별수사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의 갈등설이 돌기도 했다. 검찰은 이상득 전 의원은 기소했지만 현역 여당 의원은 계속 수사 중이라고만 밝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선 전 정권 인사들을 조준한 표적·하명수사라는 비난이 나왔다.


중수부장을 지낸 한 변호사는 “일본(검찰)에는 ‘숙시(熟枾)주의’라는 게 있다. 감을 장대로 억지로 털어선 안 되고 다 익어서 떨어지면 주워 온다는 말로 수사는 비리가 불거져 나오고 고발과 폭로가 이어지는 시점에 착수해 신속히 끝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법무부가 2013년 8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마지막으로 제출한 중수부 사건 처리 현황에 따르면 2009년부터 폐지될 때까지 5년간 중수부가 재판에 넘긴 사람은 273명이었다. 평균 유죄율은 96.9%(당시까지 재판 중인 103명 제외)로 2010년 기소자 15명은 법원에서 100% 유죄를 받아냈다. 정치 수사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적어도 중수부의 칼날은 예리했다. 그러나 중수부의 바통을 이어받아 대형 특별수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수사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냈다. 수사진의 능력도 전국에서 차출된 베테랑 특수검사들로 이뤄진 중수부보다 한참 떨어진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중수부 과장 출신의 한 부장검사는 “요즘 특별수사는 ‘운칠기삼’이란 얘기가 있다”며 “개인 능력으로 돌파해 나가고, 대부분 운 좋게 좋은 증거나 참고인을 만나야 한다”고 어려운 수사 현실을 설명했다.


김종빈 전 검찰총장(2005년)은 “수사도 부실한 데다 최근 들어 정치적 중립을 잃고 있다”며 “중수부 체제처럼 총장 직속으로 수사팀을 꾸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칼날은 날카롭되 환부만 도려내야결국 부패수사단이 출범했다. 문제는 수사력 강화에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오랜 기간 논란이 된 수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대검 중수부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보다 수사력이 좋다는 것에 검찰 안팎에 이견이 없다. 하지만 두 시스템의 공통점은 수사가 이뤄질 때마다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불신을 받았다는 점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김남주 변호사는 “국민이 원하는 것은 (검찰의) 칼날은 날카롭게 하되 남용하지 말고 환부만 정확히 도려내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 표적 수사라는 불명예를 안았던 만큼 검찰은 그 부분에 대한 역사적 자성을 하고 특수수사 능력 제고와 남용방지 장치를 설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 공정성과 표적 수사 시비에서 벗어나려면 당초 검찰이 구상했던 수사평가위원회나 특별수사지침을 만들어 사건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검찰개혁위원을 지낸 한 변호사는 “신속하게 수사를 마무리해 수사 대상의 고통도 줄여주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이석 기자 oh.i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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