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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평가단이 간다] 악당에 맞서 싸우는 태권V…명랑한 로봇 찌빠와 친구 됐어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인간의 모습을 한 거대한 금속 물체가 적을 물리치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 있나요.

로봇 비 휴먼 : 창조된 인간

로봇은 전쟁·산업·연구 및 각종 생활영역에서 인간을 대신해 임무를 수행합니다. 인간에 의해 창조됐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이 만화 속 상상력으로 탄생하기도 하죠.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만화에 등장했던 로봇들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중 체험평가단이 이번에 찾은 전시는 ‘로봇 비 휴먼 : 창조된 인간’입니다.

로봇은 기계입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어렵고 힘든 일을 대신하도록 개발한, 인간과 유사한 모습과 기능을 가진 기계를 로봇이라 부르죠. 로봇(Robot)이라는 용어는 1920년 체코 희곡작가 카렐 차페크에 의해 체코어로 ‘노동’, ‘일한다’를 뜻하는 ‘robota’를 어원으로 해 탄생했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공장에서는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산업용 로봇이 활약했고 주변 환경을 스스로 인식한 후 행동을 조절하고 결정하는 지능형 로봇도 개발됐죠. 앞으로는 생체조직과 인공장기를 생물공학적으로 결합시킨 사이보그, 인간의 피부·장기조직과 유사하게 만들어진 안드로이드가 개발될 전망입니다.

 이 전시는 국내 만화 속에 등장하는 여러 로봇 이야기들을 통해 로봇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취지로 기획됐습니다. 1960~70년대는 한국전쟁의 영향이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었기 때문인지 강한 힘을 가진 거대 전투로봇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아직도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국회의사당 돔이나 한강 바닥에서 로보트 태권V가 두 팔을 곧게 앞으로 뻗으며 등장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또 명랑만화에서는 일상 속에서 티격태격하며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친구 같은 로봇이 등장하기도 하죠. 이런 로봇의 세계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19일, 소중 체험평가단이 경기도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최은영 큐레이터가 반갑게 맞이합니다. “어서오세요. 소중 체험평가단 여러분. 지금부터 만화 속 로봇들이 어떤 모습으로 표현됐는지 살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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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큐레이터가 백길령(왼쪽)·김나현 독자에게 로봇이 그려진 만화 원고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늘을 가르고 땅을 울리는 거대로봇

전시장으로 들어가자 벽면 가득 로봇 그림이 펼쳐져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로봇이 등장하는 만화의 장면들이었죠. 이곳은 로봇만화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로봇만화, History’ 전시장입니다.

“우리나라 로봇만화는 거대 전투로봇에서 시작됐어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괴력을 발휘하는 로봇의 모습을 보며 당시 사람들은 용기와 희망을 얻었답니다.”

최 큐레이터가 소개한 첫 작품은 1964년에 발표된 임창 작가의 『강철인 마치스테』였습니다. 주인공 철민이의 시계 조종기를 통해서만 조종이 가능한 로봇이죠.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며 많은 로봇을 한꺼번에 해치울 수 있는 괴력을 가진 로봇 마치스테가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마치스테의 놀라운 힘으로 공산당의 간첩본부를 없애고 싶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반공(공산주의에 반대함)만화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진영이 서로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냉전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는 엄청난 힘을 지닌 로봇을 다룬 만화가 유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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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문 작가가 1976년에 발표한 『철인 캉타우』에 등장하는 로봇이 미니 피규어 형태로 전시돼 있다.

1960년대 후반에 발표된 이강석 작가의 『철인 삼국지』는 수소폭탄에 의해 인류가 멸망된 세상에서 로봇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뤘고, 유성준 작가의 『황금철인』에는 불을 뿜는 무기를 가진 로봇이 등장합니다.

1970년대는 태권V의 시대였습니다. 일본의 ‘마징가 Z’가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거대로봇 만화의 인기가 치솟았고, 당시 『황금철인』 제작스태프로 활용했던 김청기 감독이 ‘우리만의 로봇 만화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으로 1976년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V’를 제작해 대성공을 거뒀어요. 이순신 장군의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태권도를 구사하는 로봇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선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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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배 작가가 그린 『로보트 태권V 우주대작전』. 전시장 곳곳에는 당시 출간된 단행본 원본이 놓여 있다.

이후 김형배 작가가 만화책으로 『로보트 태권V』를 펴냈죠. ‘애니메이션보다 만화책이 더 유명한 것 같다’고 김청기 감독이 말했을 정도로 태권V는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시 만화책에 사용된 원고들이 전시돼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지금 봐도 어색하지 않은 세련된 그림체가 눈길을 끕니다.

옆으로 이동하자 무시무시하게 생긴 검은색 로봇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1977년에 발표된 『로보트 킹』의 표지예요. 최 큐레이터는 “로보트 태권V가 로봇 애니메이션을 이끌었다면, 로보트 킹은 로봇 만화책 중 가장 인기가 있었던 작품”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작품은 유기금속·반중력 등 정통 SF의 구성 요소를 도입했는데, 작가의 아이디어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더해져 단순한 거대 로봇만화 이상의 재미를 독자들에게 안겨줬다고 합니다.

따뜻한 마음 가진 로봇이 주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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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명랑한 로봇 찌빠.

인간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명랑한 성격의 로봇을 다룬 작품도 이때 등장했습니다. 전시장 가운데에는 큰 머리에 맑은 미소를 띄고 있는 로봇이 두 팔을 활짝 편 채 체험평가단을 환영하는 듯한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1979년 신문수 작가가 만든 『로봇 찌빠』입니다. 놀라지 마세요. 이 만화는 1979년부터 20여 년간 소년중앙에 연재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답니다.

당시 유행하던 거대 로봇만화가 적과 싸우고 폭력적이며 사람 명령에만 복종하는 로봇을 다룬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사람처럼 행동하며 감정을 느꼈던 찌빠의 모습을 보여줬어요. 제주도와 아프리카·북극·미국 등 다양한 곳을 여행하며 좌충우돌 모험을 즐기고 문제를 해결한다는 내용이 볼만하죠.

인간의 모습을 한 ‘인간형 로봇’을 다룬 만화도 볼 수 있습니다. 만화책에서 웹툰으로 넘어가는 시기인 2008년에 발표된 하일권 작가의 『3단합체 김창남』은 인간의 이기심을 반성하자는 메시지가 담긴 작품입니다. ‘김창남’은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만들어진 로봇으로, 재개발 지역의 집을 부수며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과 똑같은 외모뿐 아니라 감정까지 갖고 있는 인격체로 로봇이 진화하고 있지만, 오히려 기계적 사고를 하는 인간들로 인해 대립과 갈등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안겨주죠.

전시장 구석에는 로봇을 주제로 만들어진 예술 작품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평가단이 먼저 본 작품은 성태진 작가의 판화인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입니다. 태권V가 이순신 장군의 갑옷과 칼을 들고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는 거대한 판화가 눈에 들어옵니다. 옆에는 무릎이 드러난 파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동네 어귀를 어슬렁거리는 초라한 태권V가 그려진 판화도 있습니다. 이건 뭘까요?

“지구에 평화가 찾아와, 시도 때도 없이 지구를 정복하려 들던 악당들로부터 지구를 지키던 우리의 친구 태권V가 하루아침에 백수가 됐습니다. 백수가 된 영웅의 일상을 통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감정을 재미있게 표현한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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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V의 날렵한 모습이 3D 프린터로 구현됐다.

최 큐레이터의 설명에 평가단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영웅인 태권V가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라는 노래 가사처럼, 지구를 위해 밤낮으로 싸웠지만 정작 사랑하는 가족을 소홀히 대했던 우리 시대 아버지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뭉클한 메시지가 담긴 이 작품은 나무판에 그림과 글을 조각칼로 파내고 화려한 원색의 아크릴 물감을 4~5번 덧칠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전시의 마지막은 ‘헬로 카봇’, ‘로보카 폴리’ 등의 변신로봇 애니메이션이 상영되는 미니 상영관입니다. 수십 년 전부터 현재까지 여전히 어린이들의 꿈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로봇의 역할과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평가단은 즐겁게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며 관람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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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카 폴리` 등의 로봇 애니메이션이 상영되는 미니상영관 앞에 체험평가단이 캐릭터들과 함께 앉아 있다.

소중 체험평가단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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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평가단으로 참여한 백길령(왼쪽)·김나현 독자.

백길령(부천 상인초 6) 독자 ★★★★★

“로봇을 잘 알지도 못할 뿐더러 관심도 없어서 전시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시장에 들어가 큐레이터의 설명을 천천히 듣다 보니, 만화 속에서 영웅 혹은 친구로 등장하는 로봇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내 머릿속에서 나와 멀리 떨어진 로봇이라는 단어가, 내가 좋아하는 만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조금씩 가까워진 것 같아 좋았다.”

김나현(부천 상인초 6) 독자 ★★★★

“로봇 만화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너무 과거의 로봇만 보면 공감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요즘 우리가 쉽게 접하는 웹툰의 로봇도 보니 좋았다. 로봇 관련 작품들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상세한 설명도 곁들여져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만화라는 편견을 버리고, 부모님과 함께 관람하길 추천한다.”

글=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동행취재=백길령·김나현(부천 상인초 6) 독자

로봇 비 휴먼 : 창조된 인간

기간 4월 10일까지

장소 경기도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 제1·2 기획전시실

관람료 5000원

문의 032-310-3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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