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의 건강염려증과 불안 마케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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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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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한 친구는 오늘도 그의 아버지가 사다 놓고 방치한 건강보조식품 약간을 처리했다고 말한다. 그의 아버지는 외출할 때마다 누군가 몸에 좋다고 말하는 동식물성 건강식품을 사가지고 와서는 그것을 한두 번 먹고 잊어버린다. 노인들을 상대로 당일치기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패키지 투어에 참가해 지방 특산물인 건강식품을 사오기도 한다. 방치된 채 유통기한을 넘긴 물건들을 처리할 때마다 친구는 아버지가 혹시 건강염려증 환자는 아닌지 걱정한다.

 건강염려증은 주로 신체에 대한 염려를 호소하는 증상이다. 피부가 당긴다는 느낌, 복부가 팽창되는 느낌, 배 속에서 멧돼지가 내달리는 듯한 느낌 등 신체적으로 불쾌한 감각을 느낀다. 때로는 진짜 병에 걸린 듯한 고통이나 증상을 호소하고, 암이나 결핵 같은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확신하며 고통스러워한다. 물론 건강검진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건강염려증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보통 사람보다 신체 감각이 예민하게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 어린 시절 병에 걸렸을 때 지극한 관심을 받았던 경험으로 인해 증상을 사랑하게 되는 사람도 있다. 무의식에 억압된 공격성이나 박해 불안을 신체 기관으로 옮겨놓는 전치 방어기제 작용의 결과이기도 하다. 생애 초기, 중요한 양육자의 부재로 인해 애착 대상과 나누어야 하는 리비도 에너지를 자신의 신체 기관으로 돌려놓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건강염려증을 지닌 이들이 대체로 깊은 자기애적 성향을 보이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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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혹시 건강염려증이 아닌가 걱정하는 친구는 자신의 그런 마음이 불안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친구가 더 염려하는 것은 아버지가 건강 걱정 뒤편에 숨겨둔 채 마음속에서 경험하는 불안이나 분노에 대해서였다. 그토록 오랜 시간, 그토록 많은 사건을 몸과 마음으로 치러 내셨으면서도 일관되게 조용한 태도를 취하는 점이 더 불안해 보인다고 한다. 아버지가 내면 감정을 표현한다면 건강식품을 덜 사지 않을까 생각하는 마음이 역시 상대를 통제하려는 자신의 불안감임을 알고 있다.

 불안 마케팅은 여전히 불패 신화를 쓴다. 무언가를 보장해주는 금융상품, 미지의 미래에 대비하는 보험상품,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고 말하는 의료상품이 번성한다. 맛있는 먹을거리를 추구하는 문화는 자연스럽게 몸에 좋은 것을 먹고 건강에 유익한 곳에서 살고자 하는 현상으로 전개된다. 날이 갈수록 친근한 얼굴을 한 채 상냥하게 미소 짓는 불안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