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치매노인 집 찾아주고 불륜 뒤쫓고…‘두 얼굴 위치추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해 5월 28일 오전 1시10분쯤 112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다급한 목소리의 신고자는 “차가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데 (내) 위치를 모르겠다”고 했다.

추적기 달아 차 판 뒤 훔쳐가는 등
범죄 이용 4년 새 2배로 늘었지만
쇼핑몰서 할인쿠폰 즉석 전송
낭떠러지 사고 운전자 구출하기도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가 대구시 북구 서변동 일대라는 것을 곧바로 파악해 수색했지만 차량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때 경찰은 반경 3m 내 현재 위치를 알려 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친구 찾기’ 기능을 떠올렸다.

경찰은 처음 수색했던 곳으로부터 5㎞ 떨어진 한 공사현장에서 3m 아래로 추락한 채모(36)씨 차량을 극적으로 발견했다.

울산의 한 대기업 직원인 전모(41)씨는 살인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6월 여자친구 이모(43)씨를 울산시 동구의 한 모텔에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다.

전씨는 5개의 휴대전화 위치추적 앱으로 120차례나 이씨를 추적했다. 그러다 늦게 집에 들어간 사실을 알게 됐고 홧김에 살해했다. 검찰은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기사 이미지

 경찰서와 소방서에서 주로 이뤄지던 위치추적이 ‘관(官)에서 민(民)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전자장비와 인터넷, 휴대전화 등 정보통신기술(ICT)이 발달하면서 위치추적은 이제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휴대전화 인기 앱은 1000만 건 이상이 보급됐다.

 위치추적의 본래 목적은 실종자나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의 신속한 소재 파악과 구조였다. 지자체와 경찰서, 사회복지단체들은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 노인·장애인·아동을 대상으로 위치추적기를 보급해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

지난해 6월 경남 통영시에 사는 치매노인 A씨(79·여)가 오전 10시쯤 주거지를 이탈했다. 경찰은 위치추적으로 3시간 만에 A씨를 찾아 가족에게 인계했다.

기사 이미지

 기업에서는 소비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위치추적을 활용한다. 한화S&C는 일산 아쿠아플라넷에 위치정보 시스템을 구축해 이용자에게 관람 중인 동물 정보를 휴대전화로 보내 준다.

롯데그룹은 롯데월드몰, 롯데몰 김포공항점, 전국 백화점에 위치정보 시스템을 구축해 할인 정보나 쿠폰을 보내 준다. 터치 한 번으로 택시를 쉽게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위치추적이 악용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경찰청에 따르면 위치추적 관련 범죄는 2011년 28건(검거율 100%)에서 2012년 44건(97.7%), 2013년 48건(91.7%), 2014년 61건(91.8%)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불법 위치추적 유형은 크게 세 가지다. 배우자나 애인의 외도 사실을 확인하는 목적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

대전에 사는 노모(55)씨는 지난해 2월 초 인터넷에서 구입한 위치추적기를 1년 동안 교제하던 정모(49·여)씨 차에 설치했다. 정씨가 모텔에 자주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커피에 수면제를 넣어 정씨가 마시도록 해 살해하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선거에서 상대 후보의 약점을 잡기 위해서도 위치추적이 악용된다.

지난해 3월 서울의 한 농협 조합장에 출마한 최모(62)씨는 선거 직전 흥신소를 찾았다. 경쟁 후보 임모(64)씨의 치부를 찾기 위해서였다. 최씨에게 600만원을 받은 흥신소 직원 이모(53)씨는 위치추적 앱이 깔린 휴대전화를 임씨 차량에 설치, 임씨의 위치정보 29건을 최씨에게 보냈다.

 절도 등 다른 범죄를 위해 위치추적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울산에 사는 조모(31)씨는 지난해 12월 22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전날 500만원을 주고 산 중고차가 사라졌다. 경찰에 잡힌 범인은 조씨 차량 밑에 위치추적기를 단 뒤 조씨를 미행한 중고차매매업자였다.

 위치정보보호법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차량 등에 위치추적기를 몰래 설치하는 행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하지만 위치추적기 구입 과정에서 업체가 불법 사용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위치추적은 사용자의 목적에 따라 역할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순기능은 확대하되 불법 행위 처벌은 강화해야 한다”며 “추적 가능 시간·장소·대상을 사용 목적에 맞게 설정하는 기술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울산·인천=유명한·최모란 기자
famou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