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에 살다] (13) 토왕폭 초등 보고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그러던 1980년 어느 날 박영배씨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약속 장소에 나가보니 긴밀히 만나자던 말과는 달리 여러 명의 산꾼들이 모여 있었다.

허욱(악우회).이찬영(보우회).허정식(은벽산악회).민병국(어센트).고윤석(중대산악회)씨 등 면면이 소속 산악회를 대표할 정도로 유명한 산꾼들이었다.

이들은 알프스 3대 북벽의 하나인 아이거 북벽을 겨울에 오르겠다는 엄청난 계획을 세우고 동지를 모으는 중이었다. 등반대장으로 내정된 박영배씨가 나를 등반대원으로 추천하는 바람에 나도 그 자리에 참석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박영배씨의 아이거 북벽 겨울등반 동참 제안을 가까이 지내는 연세산악회의 한 후배에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는 뜻밖에도 아이거 북벽에서 박영배씨와 자일을 함께 묶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후배가 반대하는 이유는 토왕폭 초등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로 인해 나는 환상의 얼음기둥 초등자인 박영배씨에 대해 불미스러운 소문이 퍼져있음을 알게 됐다.

사상 첫 '토왕폭의 사나이'인 박영배.송병민씨가 속한 크로니산악회는 월간 '산' 77년 3월호에 토왕폭 초등 관련 등반보고서를 실었다.

'…이런 고도에서 헤드랜턴에 의지해 아이젠의 앞이빨을 빙벽에 박는 프런트 포인팅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박영배 대장은 10여m를 프런트 포인팅한 후 드디어 12일(11일의 오기:필자註) 오후 6시30분 (실제로는 자정 무렵:필자註) 정상에 도달했다. 밑에서 확보를 보고 있던 송병민 대원은 박영배 대장과 의사소통하려고 큰 소리를 질렀지만 얼음벽에 가로막혀 잘 들리지 않았다. … 송대원은 한 지점에서 몇 시간이나 확보를 보았기 때문에 온몸이 얼어붙어 있었다. 그가 이를 악물고 정상에 올라선 것은 12일 오전 2시쯤이었다'.

후배는 이 보고서의 내용이 실제와 상당히 차이가 난다며 박영배씨와 나의 아이거 북벽 동행을 반대했던 것이다.

토왕폭 정상에 먼저 오른 박영배씨가 밑에 있는 송병민씨의 확보를 봐주지도 못하고 정상 부근 설사면에 쓰러졌다는 게 후배의 얘기였다. 그 바람에 송병민씨는 확보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 토왕폭 상단을 올라가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동국대팀.부산합동대팀의 산사나이들이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산악계에는 웬만큼 알려진 진실이라고 후배는 덧붙였다.

그 후 서울 무교동의 어느 술자리에서 박영배씨에게 물었다.

"영배형! 형의 토왕폭 초등에 대해 말들이 많아요. 그때의 진실을 얘기해 주시오."

박영배씨는 즉석에서 토왕폭 초등에 얽힌 고해성사를 했다.

박인식 <소설가.前 사람과 산 발행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