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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소년의 꿈속엔 이런 여신들이 살았습니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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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 VOD 기획전 ‘응답하라 1988 여배우’

1988년 사춘기였던 ‘어린 수컷’들에게 여배우는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였다. 그들은 소년의 욕망을 일깨웠고, 달달한 로맨스의 환상을 꿈꾸게 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tvN, 이하 ‘응팔’)이 소환한 건 바로 그런 추억. 한국영상자료원이 1월 한 달간 진행하는 VOD 기획전 ‘응답하라 1988 여배우’는 책받침 여신부터 연기파 월드 스타까지 그 시절 여배우 6인의 대표작을 돌아보는 귀한 기회다. 말하자면 이건, ‘응팔’을 핑계로 돌아보는 그 시절 소년들의 여신에 관한 이야기다.

1980년대는 여배우의 시대였다. ‘정윤희-유지인-장미희’ 트로이카는 여전히 활동 중이었고 이미숙·원미경·이혜영·나영희·김진아·송옥숙 등 개성파가 대거 등장했다. 당시 대세였던 ‘에로티시즘’의 여전사도 있었다. ‘애마 부인’(1982, 정인엽 감독)과 함께 안소영 열풍이 불었고, 2·3대 애마인 오수비와 김부선이 뒤를 이었다. 원미경이 ‘옹녀’가 되고 이보희가 ‘어우동’이 되었으며, 이미숙이 ‘뽕’(1985, 이두용 감독)의 여주인공 ‘안협네’가 된 것도 이때였다. 당대의 매니어들에겐 선우일란·김문희 그리고 ‘빨간 앵두’ 시리즈(1982~90)의 이수진도 분명 잊지 못할 이름일 것이다. ‘비운의 팜므파탈’ 오수미도 빼놓을 수 없다.

한편 ‘예쁜이들’의 계보도 있었다. 이혜숙·조용원·전세영·금보라·최수지·황신혜·옥소리·김희애·최명길·배종옥·전인화·박순애…. 그들은 청순함이나 세련미 혹은 인형 같은 외모를 내세우며 아모레와 쥬단학 광고 모델이 되었고, 심혜진과 최진실은 신드롬이었다. 1980년대를 마무리한 건 하이틴 스타 군단이었다. 크게 두 세력으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드라마 ‘고교생 일기’(1983~86, KBS1)엔 월드 스타 강수연을 비롯해 채시라와 하희라가 있었다.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1987~91, KBS1)엔 이미연·이상아·최수지·신애라 그리고 성숙한 이미지의 김혜수가 있었다. 우열을 가를 수 없는 1980년대 히로인 중 잊을 수 없는 얼굴은 단연 황신혜·이보희·김혜수·옥소리·최수지·강수연이다.

황신혜, 첫사랑의 판타지

VOD로 보는 대표작 │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배창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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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여배우 연대기에서 미모의 관점으로 볼 때 황신혜는 정점이었다. ‘도회적 이미지’ 혹은 ‘컴퓨터 미인’의 전형. 1983년에 데뷔해 TV 드라마로 인지도가 있긴 했지만, 그를 완성시킨 건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이다. 이 영화에서 순애보의 대상이 된 그에겐 ‘첫사랑 판타지’에 어울릴 법한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후 그는 ‘개그맨’(1989, 이명세 감독) ‘301 302’(1995, 박철수 감독)처럼 의외로 실험적인 선택도 했고, 억척스러운 캐릭터도 종종 맡았다. 그러나 황신혜의 행보는 다시 ‘미모’로 귀결됐다. 최근까지 그는 안타까운 사연의 지원자들을 미용 성형으로 변신시키는 TV 프로그램 ‘Let 美人’(2011~2015, tvN)의 안방 마님으로 가장 활발히 활동했다.

강수연, 스펙트럼이 남다른 월드 스타

VOD로 보는 대표작 │ ‘아제아제바라아제’(1989, 임권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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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기와 함께 1980~90년대 한국영화를 ‘하드 캐리’ 했던 배우. 아역 배우 출신으로 하이틴 스타를 거쳐 ‘씨받이’(1987, 임권택 감독)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월드 스타’라는 칭호를 얻었다. 3년 연속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아제아제바라아제’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깊은 정점이다. 그는 그 시절 거의 유일하게 원톱 주연으로 흥행을 일궈낼 수 있던 여배우다. 고뇌 속의 비구니부터 페미니스트까지 놀라운 스펙트럼을 보여주기도 했다. 트렌드 중심의 기획 영화와 거장의 작가주의 작품을 편안하게 오가는 공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지금은 부산국제영화제의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명언을 남겼다. 과연 여장부다.

최수지, 비련의 멜로퀸

VOD로 보는 대표작 │ ‘상처’(1989, 곽지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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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황신혜와 유일하게 견줄 만한 외모적 무게감을 지녔던 배우. 황신혜가 서구적 마스크라면, 최수지는 동양적이면서도 세련된 느낌으로 어필했다. 드라마 ‘토지’(1987~89, KBS1)와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데뷔와 함께 스타덤에 오른 그녀는 굴곡 없이 꾸준한 연기 생활을 펼쳤다. 전문 분야라면 아무래도 멜로. 그런 면에서 김수현 원작의 영화 ‘상처’(1989, 곽지균 감독)는 그에게 최적화된 프로젝트였고, 이 영화로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고아로 자라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 쓸쓸히 죽어가는 하영 역은 그가 보여줄 수 있는 감성의 모든 것이었다.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이 이어지던 1990년대에 서서히 대중에게 잊혔지만, 아직도 최수지는 그 시절을 강하게 환기시키는 이름이다.

이보희, 외유내강의 얼굴

VOD로 보는 대표작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8, 이장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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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이보희에겐 두 개의 얼굴이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이장호 감독)에선 지그시 눈을 감고 입가에 나지막한 신음 소리를 베어 문 채 고개를 뒤로 젖히는 에로틱한 이미지였다면, ‘접시꽃 당신’(1988, 박철수 감독)에선 촉촉한 멜로의 히로인이었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의 이보희는 매우 예외적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주인공의 죽은 아내와 간호사, 작부까지 1인 3역을 해낸다. 필모그래피에서 단 한 번도 목격된 바 없는 생경한 세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다. 엔딩의 굿판 장면에서 신 내린 모습은 그의 강렬한 감성을 실감할 수 있는 표정이다. 외유내강의 외모와 풍부한 눈빛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1990년대 중반부터는 TV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혜수, 발랄함과 성숙미의 공존

VOD로 보는 대표작 │ ‘어른들은 몰라요’(1988, 이규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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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수많은 하이틴 스타의 행렬 속에서 김혜수의 포지션은 무척 독특했다. 15세에 찍은 첫 영화 ‘깜보’(1986, 이황림 감독)는 ‘19금’ 영화였다. 어른스러운 외모 탓이었고, 그에겐 10대 특유의 발랄함과 성숙한 여인의 느낌이 공존했다. 이때부터 그의 수난(?)은 시작된다.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노주현이나 박근형 같은 아버지뻘 되는 배우의 부인(!) 역할로 등장했으니…. 아마도 이토록 넓은 연령대의 스펙트럼을 지녔던 하이틴 스타는 전무후무할 것이다. ‘어른들은 몰라요’는 10대 시절 김혜수가 유치원 교사로 나왔던 영화. 웃음과 감동의 공식에 충실하며, 추억의 가족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1986~94, MBC)의 ‘순돌이’ 배우 이건주가 출연한다. 김혜수가 배우로서 날개를 펴기 시작한 건 ‘타짜’(2006, 최동훈 감독)에서 ‘이대 나온 여자’ 정 마담이 되면서부터. 이후 지금까지 거침없이 승승장구다.

옥소리, 사랑에 상처받은 영혼

VOD로 보는 대표작 │ ‘구로 아리랑’(1989, 박종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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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은 스스로 후계자를 정한 걸까? 황신혜의 추천으로 1987년 아모레 CF 모델로 데뷔한 옥소리는, 그 시절 또 한 명의 여신이었다. 첫 영화는 ‘구로 아리랑’. 다소 의외의 선택이었고, 아직 여물지 않은 배우에게 각성하는 노동자 캐릭터는 사실 조금 버거워 보였다. 그의 본색을 만나기 위해선 1990년대로 건너가야 한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1990, 곽재용 감독)와 ‘젊은 날의 초상’(1991, 곽지균 감독)은 옥소리라는 청춘 스타의 멜로 필(Feel)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도전하는 상처 받은 영혼. 한 남자에게 좌절을 안기는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옥소리는 잊을 수 없는 판타지였다. 이후 이혼을 둘러싼 구설수와 스캔들만 없었다면, 여전히 우리 곁에 있었을 배우다.

* 기획전 ‘응답하라 1988 여배우’는? 한국영상자료원이 운영하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사이트(www.kmdb.or.kr)에서 드라마 ‘응팔’에 힘입어 마련한 기획전. 황신혜·이보희·김혜수·옥소리·최수지·강수연 등 여배우 6인의 대표작 6편을 VOD로 만날 수 있다. KMDb 사이트에 접속해 클릭 몇 번이면 당대 여신들의 ‘리즈’ 시절 영화 속 꽃미모에 빠져들 수 있다는 말씀. VOD 관람료는 1월 한 달간 무료다. 1월 이후에는 1편당 500원에 관람할 수 있다.

글=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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