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민 인내가 불법파업 이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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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국적인 수송.물류난을 초래한 철도노조의 불법 파업 사태가 밤새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측에서 원만한 해결을 위한 나름대로의 결단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국가 전체를 위해 지극히 바람직한 것이다.

사실 해외에선 우리의 파행적 강성노조가 결국 경제를 나락으로 끌고갈지 모른다는 우려가 심각한 데, 국내에선 경제난 극복을 위해 힘을 합쳐도 모자랄 경제 주체들이 하투(夏鬪)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했던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현재의 파업이 계속된다면 청계천 복원공사가 시작되는 오늘부터는 서울시내 교통혼잡도 극심해질까 걱정이다. 자칫하면 정부는 정부대로, 시민은 시민대로 좌절하고, 그래서 불법 파업과 타협할 구실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불법 파업에 대해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철도노조원들이 이번 파업에 내건 '철도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는 내용만 보아도 섬뜩하다. 아무리 노조 입장에서 절박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선 국민의 발을 묶어 국민생활과 국가경제는 엉망이 돼도 괜찮다는 생각을 드러낸 셈이다. 더구나 이번 파업은 절차와 목적이 모두 불법이며 최소한의 정당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노조의 전도된 가치관과 잘못된 노사관행을 바꾸는 최대의 힘은 시민들의 인내다. 파업 역시 경제행위로 본다면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법과 원칙을 고수하기는 힘들다. 교통난으로 인한 출퇴근길 고통은 사회적 기틀을 확립하기 위한 비용으로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불평과 불만을 터뜨리면 정부가 압박을 느끼게 되고, 졸속 타협안을 꺼내고 말 것이다.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이 정부에 힘을 주고, 차제에 노사관행을 바꾸는 전기를 만들 것이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로 어렵지만 각종 원자재 수송난을 참아내야 한다. 당장의 불편을 견뎌내지 못하면 두고두고 불법 파업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철도파업에 공권력 투입과 복귀명령을 내리고 강력 대처를 다짐하고 있다. 정부는 우선 파업에 따른 불편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하는 한편 정부의 신뢰를 걸고 끝까지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노동자가 잘 살기 위해서라도 경제의 발목을 잡는 노동운동은 자제돼야 한다"는 언급은 뒤늦었지만 맞는 말이다. 불법적 집단행동을 용인한다면 우리에겐 희망이 없다. 불법 파업을 이기는 유일한 대책은 정부와 국민, 기업 모두가 인내심을 갖고 단호히 대응하는 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