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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인사이드] '리벤지 포르노' 처벌할 수 없다?…대법원 판결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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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53)씨와 B(52ㆍ여)씨는 연인 관계였습니다. B씨에게는 가정이 있었죠. 두 사람이 사귀는 동안 B씨는 A씨에게 자신의 나체사진을 휴대전화로 찍어 보냈습니다. 두 사람은 만난지 4개월 만에 헤어졌습니다.

A씨의 ‘보복’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A씨는 B씨가 전에 보냈던 나체 사진을 자신의 SNS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했습니다. 이 계정으로 인터넷에 글을 쓰면서 B씨의 딸이 올린 글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검찰은 “옛 연인의 알몸 사진을 의사에 반해 유포했다”며 A씨를 성폭력 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제14조 1항 등)를 적용해 기소했습니다. 1ㆍ2심 법원도 이를 유죄로 판단해 각각 징역 1년, 징역 8월을 선고했죠.

그런데 정작 대법원은 “A씨를 처벌할 수 없다”며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현행법은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한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어서 스스로 자신의 몸을 촬영한 것까지 포함시켜선 안 된다”고 판결했습니다.

문제가 된 성폭력범죄처벌법 조항은 아래와 같습니다.

카메라나 유사한 기계장치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공공연하게 전시ㆍ상영한 사람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14조 1항)

1항의 촬영이 촬영 당시에는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아도 사후에 의사에 반해 공공연하게 전시ㆍ상영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14조 2항)

대법원은 B씨가 사진을 직접 찍어 보낸 만큼 A씨가 유포한 사진이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해 촬영한 촬영물’이 아니라고 본 겁니다.

그리고 재판부는 이런 해석을 달았습니다.

국가 형벌권의 자의적인 행사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법률의 해석은 엄격해야 한다.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하거나 유추 해석하는 것은 죄형 법정주의의 원칙에 어긋난다”

하지만 이 판결에 따르면 당사자가 직접 찍은 사생활 동영상은 상대방이 동의 없이 유포해도 성폭력범죄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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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제시 되는 ‘이별 범죄’나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ㆍ보복으로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는 것)’를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여서 논란이 예상됩니다. 국내에선 이런 동영상이 올라오는 ‘소라넷’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법원 관계자는 “법 조문이 명백히 다른 사람을 찍은 경우만 처벌하도록 돼 있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의사에 반해 인터넷에 사진을 올린 부분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독일의 연방최고법원은 지난 달 21일 “연인 관계 때 상대방의 동의 하에 찍은 사진과 동영상에 대한 권리는 연인관계가 끝난 즉시 상실된다”며 “보관하고 있던 나체 사진을 삭제하라”는 판결을 했습니다. 근거로 사생활 침해 우려를 들었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사진작가 남성과 사귀던 여성이 연인 사이였을 때 스스로 나체 사진 등을 찍었고, 헤어지자 사진을 지우라고 소송을 냈다고 하네요.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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