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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팔아 만두가게 내 노숙인 자활 돕는 최성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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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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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문 아트랩꿈공작소 대표가 터키 사람들이 써 준 숫자를 들어 보여 주고 있다. 지난해 7월 터키에 가서 받아 온 숫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트랩꿈공작소. 라디오 방송작가 최성문(44)씨가 2013년 겨울 만든 ‘예술실험실’이다. 예술을 통해 꿈을 현실로 만들어보자는 뜻에서 이름을 지었다. 그 후 2년, 꿈은 이뤄졌다. 365명이 숫자 하나씩 쓴 달력을 만들어 파는 프로젝트 ‘하루를 쓰다’를 진행해 수익금을 노숙인 자활사업에 보탰다. 이젠 우리 사회의 다문화 소외계층, 특히 아시아인들을 돕기 위해 두 번째 ‘하루를 쓰다’를 추진 중이다.

[연중기획] 매력시민 세상을 바꾸는 컬처디자이너
기부 프로젝트 만든 방송작가
365명이 숫자 하나씩 쓴 달력
1만1000부 판매, 종잣돈 마련

 출발은 평범한 봉사활동이었다. 최씨는 2009년부터 서울 안암천 부근 노숙인 무료급식소 ‘바하밥집’에서 배식 봉사를 했다. “단순히 밥 주는 것 외에 또 다른 일로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루를 쓰다’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하루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노숙인들에게 다시 소중한 하루를 선물하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24시간씩 주어지는 하루의 의미를 되새기며 모두가 똑같이 귀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도 싶었다. 뜻을 함께하는 디자이너·사진작가·작곡가 등을 모아 아트랩꿈공작소를 열었다.

 2014년 1월 21일 먹물과 붓을 들고 노숙인들을 찾아가 날짜를 쓰게 한 것이 작업의 시작이다. 이후 7개월 동안 안산 외국인 노동자와 여명학교의 탈북새터민, 발달장애 어린이와 암병동 환자들, 문화예술인과 농촌 주민들에게 숫자를 받아 365일 달력을 채웠다. 달력 표지의 글씨 ‘2015년 하루를 쓰다’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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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선생님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어요. 메일을 보내 ‘하루를 쓰다’ 기획의도를 설명하고 글씨를 부탁드렸는데 곧바로 우편으로 보내주셨죠.” 가수 장사익과 양동근·악동뮤지션, 캘리그래퍼 강병인, 동요작가 백창우 등도 글씨와 그림으로 달력 만들기에 동참했다. 달력 디자인과 홍보용 영상 제작, 프로젝트 주제가 ‘하루를 쓰다’의 작사·작곡·노래·반주 모두 아트랩꿈공작소 예술인들의 재능기부로 해결했다. 그렇게 달력 1만1000부를 만들어 팔았고 수익금 1580만원은 전액 ‘바하밥집’에 기부했다. 그 돈을 종잣돈 삼아 지난해 10월 서울 보문동에 테이크아웃 만두가게 ‘만두동네’가 문을 열었다. 노숙인 두 명이 만두 만드는 기술을 익혀 가게에서 일한다.

 “수익금 액수는 크지 않죠. 하지만 재능기부를 한 예술인뿐 아니라 숫자 하나 하나를 쓴 365명 모두에게 기부하는 즐거움을 줬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달력 11월 13일의 날짜를 쓴 말기 암환자는 2014년 12월 결국 숨을 거뒀다.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 완성된 달력을 보고 ‘기부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최씨는 “‘나도 남을 도울 수 있네’란 마음을 선물할 수 있어 보람이 컸다”고 말했다.

 최씨는 2017년 달력에 들어갈 아시아인 365명이 쓴 숫자를 모으기 위해 지난해 네팔과 일본·터키 등을 다녀왔다. 최씨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먼저 상상하고 기획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순수한 열정으로 다가가면 마음이 움직이고 그 마음이 모이면 상상했던 것보다 더 엄청난 힘이 생긴다”고 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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