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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복마전 중동 정세 어떻게 전개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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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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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중동이 새로운 양상의 갈등에 휘말리고 있다. 수니파의 중심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이어 바레인과 수단도 이란과 국교를 끊었다. 아랍에미리트는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대사급에서 대리대사급으로 격하했다. 무역·항공 등 민간 교류도 중단됐다. 반면 이란·터키 등 이슬람권 내 시아파 거주 지역에서는 반(反)사우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수니파 사원들이 폭파당했다.

 이 사태의 본질은 역내 외교전이다. 그리고 이슬람의 양대 종파 수니-시아파 간 본격적 갈등의 시작이다. 더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충돌의 서막이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발생한 개별 국가 내 정치 불안 혹은 이슬람국가(IS) 등 테러세력 발호와는 차원이 다르다. 중동 지역의 거대한 두 단층이 충돌하고 있다. 중동의 정치 질서가 재편될 것이다. 수니-시아파 단층을 따라 이슬람권은 더욱 분열될 것이다. 역내 불안정이 더 심화될 것이다.

 사태의 발단은 사우디의 집단 처형이었다. 반정부 시위 주동자 혹은 테러세력 47명에 대한 사형 집행이다. 처형된 인물 중에는 사우디 동부 지역의 시아파 최고지도자들도 있었다. 니므르 바키르 알니므르 등 4명이다. 2011년 아랍의 봄에 영향을 받아 사우디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간헐적으로 벌어졌다. 동부 시아파 지역에서 주로 발생했다. 알니므르는 직접선거, 주변국 바레인 시아파 지역을 아우르는 자치정부 설립을 주창했다. 사우디 왕정 및 주권국가 체제에 도전한 것이었다. 사우디 정부는 처형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대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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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과 국제사회의 간곡한 만류에도 사우디 정부는 처형을 강행했다. 이에 이란 내 시위대가 사우디 공관을 방화했다. 사우디는 즉각 단교를 감행했다. 사우디 집권세력은 왕정체제의 도전에 강력 대응하고 있다. 그만큼 내부 불안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왕실 내 쿠데타 움직임도 있었다. 지난해 1월 즉위한 국왕이 3개월 후 자신의 가문 출신으로 후계구도를 재편했다. 왕세제를 사촌으로 교체하고, 아들을 부왕세자와 국방장관으로 임명했다. 여기에 1년 이상 이어진 저유가로 사회적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다. 지난해 재정적자가 113조원에 달했다. 여러 보조금을 철폐하고 휘발유 가격도 올려야 했다. 그럼에도 국왕과 아들 국방장관은 예멘 내전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매일 전비 2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

 자국 내 시아파 지도자 처형은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봉쇄하겠다는 의지도 담겼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 급부상하고 있다. 사담 후세인 수니파 정권이 무너지고 이라크에 시아파 중앙정부가 들어섰다. 소위 ‘시아파 벨트’가 연결됐다. 시리아 집권세력도 시아파의 일파인 알라위파다. 레바논의 최대 무장정파인 헤즈볼라도 시아파다. 그리고 바레인 인구의 70%, 쿠웨이트 인구의 40∼50%가 시아파다. 예멘 북부, 사우디 동부 등에 시아파가 밀집 거주하고 있다. 사우디는 사실상 시아파에 둘러싸여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이란의 영향력 확대에 또 다른 계기가 마련됐다. 서방과 이란의 핵협상이 타결된 것이다. 이르면 이달 중순부터 이란에 대한 제재가 해제된다. 이란이 복귀하면 중동 내 사우디의 패권적 위상은 크게 흔들린다. 이란은 세계 2∼3위 석유 매장량을 자랑한다. 군사력, 인구, 수자원, 식량 자급자족 등에서도 사우디에 크게 앞선다. 이란이 향후 중동 내 패권국가가 될 것은 자명하다. 이에 사우디 등 수니파 아랍 국가들이 긴장하고 있다. 사우디의 외교적 조치에 수단·바레인·아랍에미리트 등이 뒤따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중동 정세는 복마전 양상을 보일 것이다. 아랍의 봄 이후 많은 정권이 교체되고 여러 나라가 내전에 휩싸여 있다. 권력의 공백을 틈타 테러세력이 중동을 휘젓고 있다. 시아파와의 갈등을 이용해 왔던 수니파 테러조직 IS의 활동이 거세질 가능성도 크다. 테러 위협은 중동의 벽을 넘어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난민사태도 야기했다. 사우디 주도 수니파와 이란 주도 시아파 벨트의 분열이 깊어지고 있다. 우리의 외교 전략도 이제 국가별 상황과 성향에 맞춰 더 섬세하게 재조정돼야 한다.

 경제적 악영향도 크다. 우리의 최대 건설플랜트 시장인 사우디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핵협상 타결 이후 진출 확대를 기대하던 이란의 정정도 녹록지 않다. 유가의 급등락도 예상된다. 제재에서 벗어난 이란이 증산하면 유가는 더 떨어질 것이다. 이란의 경제 재건을 막기 위해 사우디도 증산하면 유가는 더욱 폭락할 것이다. 반대 시나리오도 있다. 이란-사우디 간 무력충돌이 발생하면 세계 최대 에너지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막힐 것이다. 또 사우디 동부 시아파가 이번 처형에 반발해 유전 및 송유관을 폭파할 수 있다. 이 경우 배럴당 100달러 이상 폭등 가능성도 있다. 유가 급등락에 대처할 대책도 필요하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