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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다시 생각한다, 열정의 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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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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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 이동익 선생이 쓴 ‘진중음(陣中吟)’. 충무공 이순신이 진중에서 읊은 애국시다. [사진 유천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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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는 곧 그 사람’이라는 ‘서여기인(書如其人)’은 그를 두고 한 말 같다. 50여 년을 눈이 오나 비가 내리나 한마음으로 글씨만 쓴 원로 서예가 유천(攸川) 이동익(76·사진)씨는 “서예는 등산과 같다”고 비유했다. 뭐가 나올지 모르면서 산에 올라 사람도 만나고 풍경도 보면서 오르고 또 오르면 좁은 시야가 툭 터지면서 새 경지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명필이 되려고 글씨를 쓰는 건 아니죠. 말은 마음의 소리요,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라.” 한때 다른 일에 한눈을 팔려 했을 때, 선친이 “너는 글씨를 써라” 한마디로 눌러 앉히신 일을 그는 운명이라 여긴다. 이런 그를 두고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유천은 붓을 잡기 위하여 세상에 태어난 사람처럼 모든 정열을 서도에 쏟았다”고 기렸다.

원로 서예가 이동익 개인전

 12일부터 2월 13일까지 서울 명륜동 성균갤러리에서 열리는 ‘유천 이동익 선생 성균관대 초청 서예전시회’는 그의 4번째 개인전이다. “글씨는 마음이 내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글씨가 안 된다”는 유천의 소신을 보여준다. 수십 번 글을 읽으며 그 심경을 제 것으로 만들고 나서 붓을 들어야 글씨 획에 기운이 돋는다. 종이도 없고 먹도 부실할 때 반반한 돌에 글씨 연습을 한 힘이 지면을 뚫고 솟아오른다.

 드물게 여는 전시회에 그는 일관되게 ‘애국시’를 내놓았다.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석주(石洲) 이상룡 선생 문중인 그는 이번 개인전의 주제를 ‘나라를 다시 생각한다’로 내걸었다. 국운이 풍전등화일 때 제 몸을 돌보지 않고 대의를 위해 목숨을 던졌던 선조들의 뜻을 더듬었다. 석주 선생의 ‘경학사 취지서’와 ‘만주기사’, 매천 황현의 ‘절명시 사수’, 충무공의 ‘진중음’ 등 한 자 한 자 절절한 기억을 피로 쓰듯 진한 먹으로 되새겼다.

 이번 전시의 백미는 퇴계 이황의 ‘매화시’ 91수를 이어 쓴 길이 50m 대작 ‘매화무진장(梅花無盡藏)’이다. 유천은 “좋아해서 한 수 두 수 쓰다 보니 다 쓰게 됐다”고 했다. 02-733-6565.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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