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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0조원 시장 놓고 이부진·김동선·박서원 앞장서 루이비통·샤넬 등 유치 총력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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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호 18면

지난달 31일 오후 2시 개장 나흘째를 맞은 서울 여의도 한화 갤러리아면세점63. 정문과 연결된 지하 1층에는 설화수와 헤라 같은 국산 화장품 코너에 중국인 관광객 서너명만이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이영자(57·서울 여의도동)씨는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여행 때마다 면세점에서 사는 화장품이 몇 개 있는데 여기선 팔지 않는다”며 이내 발길을 돌렸다. 시계와 보석류를 취급하는 1층도 한산하긴 마찬가지였다. 중앙 판매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매장이 가림판으로 가려져 있어 더욱 휑해 보였다. 패션 잡화를 파는 2층과 국산 기념품을 판매하는 3층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이곳엔 지하 1층에 있는 국산 화장품 브랜드 일부가 중복으로 입점해 있었다. 김종근(31·서울 잠실동)씨는 “아직 명품 브랜드들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진짜 썰렁하다”며 “현재 상황이 이어진다면 당분간 다시 방문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입구를 지키던 안내 직원은 “아직 정식 개장이 아니라 가개장 상태라 주로 단체 관광객이 방문하고, 내국인 손님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지난 한해를 뜨겁게 달궜던 면세점 업계가 ‘대박과 쪽박의 레이스’를 시작했다. 지난해 7월 한화갤러리아(여의도)와 호텔신라(용산)가 신규 사업자로 선정된데 이어 11월에는 신세계(회현동)·두산(동대문)이 사업권을 따냈다. 이때만 해도 이 회사들의 주가는 줄줄이 상한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달 임시 개장한 호텔신라에 이어 최근 문을 연 한화갤러리아의 초기 풍경은 기대와 사뭇 달랐다. 업계 관계자는 “호텔신라의 면세점 매출은 하루 15억원대, 한화는 1억원대에 그치는 것으로 안다”며 “개장 초기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 정도로 손님이 없는 것은 의외”라고 말했다. 이달 중 문을 여는 하나투어의 SM면세점(인사동)에 이어 신라(3월 정식개장), 두산·신세계(4월), 한화(7월) 등 서울에 문을 여는 신규 면세점만 5군데다. 서울 시내 면세점이 기존 6곳에서 9곳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28일 개장한 서울 여의도 한화 갤러리아면세점63(왼쪽)과 같은달 24일 문을 연 용산의 HDC신라아이파크 면세점. [신인섭 기자·뉴시스

명품 브랜드와 단체 관광객이 좌우업계에서는 면세점들의 성패가 소위 ‘빅3’라고 불리는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샤넬·에르메스를 유치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빅3 매출이 전체 면세점 매출의 10%에 달할 정도로 비중이 작지 않은데다 명품 브랜드를 많이 유치해야 인지도가 올라가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면세점들은 개별 브랜드의 매출 비중을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2013년과 2014년 인천공항 면세점 매출을 살펴보면 2년 연속 루이비통이 1위를 차지했다. 설화수(화장품)·정관장(식품)·KT&G(담배)를 제외하면 랑콤·샤넬·디올과 같은 명품 브랜드가 10위까지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같은 브랜드 파워 때문에 명품 유치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힘들다. 익명을 요구한 한 면세업체 임원은 “사업 초기 명품 회사들을 찾아가 구걸하다시피 입점을 요청했는데도 실제 유치할 때까지 2년이 걸렸다”며 “인테리어 비용으로 3.3㎡(1평) 당 5000만원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협상에 성공했는데 경쟁이 치열해져 이조차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에서 인기상품을 사오려면 그 두 배를 해당 업체가 지정하는 신상품으로 가져와야 하고, 할인 시점과 기간도 이들이 정해주는 대로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루이비통은 특히 마진율이 낮아 돈을 벌지 못하는 브랜드지만 고객 유입효과가 크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유치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명품업체들의 콧대가 높다보니 면세점 사업에 뛰어든 회사의 최고경영진과 오너 일가까지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 삼성가(家)의 장녀 이부진(46) 호텔신라 사장은 신규 사업자로 선정된지 두 달 만인 지난해 9월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 베르나르 아르노(67) 총괄 회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LVMH그룹은 루이비통·디올·겔랑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 최대의 명품 회사다. 회사 관계자는 “아르노 회장에게 직접 유치 제안을 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유치를 위해 가능한 한 접촉을 늘려가며 설득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화에선 김승연(64) 회장의 3남인 김동선(27) 한화건설 과장을, 24시간 면세점을 내세운 두산은 박용만(61) 회장의 장남인 박서원(37) ㈜두산 면세점 전략담당 전무를 앞세웠다. 업계 관계자는 “면세점은 닭(명품 브랜드)이 먼저냐, 달걀(단체 관광객)이 먼저냐고 할 정도로 브랜드와 관광객 유치가 중요하다”며 “오너들이 직접 뛴다 해도 샤넬·루이비통 같은 명품 매장을 내는 건 아무리 빨라도 올해 말, 늦으면 내년 이후가 되야 가능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홍종학 “재벌 특혜 … 수수료 100배 올려야”면세점 사업의 단기 전망은 어둡지 않다. 늘어나고 있는 ‘요우커(游客, 중국 관광객)’덕이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한국을 찾는 요우커가 지난해 601만명에서 올해 806만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국내 면세점 시장도 2014년 8조3080억원에서 올해는 10조8140억원대로 급증할 것으로 예측됐다. 한국투자증권은 면세 사업자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7.3% 수준인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국회가 주도한 잇딴 규제 강화로 빨간 불이 켜졌다. 기존 10년이던 면세점 사업권 기간을 5년으로 줄이고 자동연장 조항을 삭제한 관세법 개정안이 2012년 말 국회를 통과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지난해 심사에서 2014년 기준 연 2700억원대 매출을 올렸던 SK네트웍스(워커힐)와 4820억원 규모의 롯데 잠실점이 한순간에 사업권을 잃었다. 올해 5월에는 김포공항 면세점 사업권을, 2017년 12월에는 롯데면세점 코엑스점 특허가 만료되고 롯데 부산점(2018년), 신라호텔의 장충·제주점(2019년) 등도 줄줄이 사업권 만료 기간이 돌아온다. 지금대로라면 현재 강남권에 남아있는 유일한 서울 시내 면세점인 코엑스점은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면세점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는 시각은 여전하다. 면세점 5년 재승인 법안을 발의한 홍종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면세점 면적의 30%를 중소기업에, 20%를 한국관광공사 및 공기업에 분배하는 법안(2013년 11월 발의), 매출의 0.05%인 특허수수료를 100배인 5%로 인상하는 법안(2015년 10월) 등을 잇따라 발의했다. 홍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표적인 재벌인 롯데와 신라가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면세점 사업의 현실”이라며 “이같은 특혜를 막기 위해 5년마다 재심사라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면세점 업계에서는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반발했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백화점은 매장을 임대 형식으로 운영하지만 직접 물건을 사들여 되파는 면세점은 통상 6000억원대의 재고를 안고 간다”며 “사업권을 5년마다 다시 받아야 한다면 누구도 장기 비전을 장담할 수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명품 브랜드 유치도 어려워진다. 글로벌 유통 전문지인 무디리포트가 “면세점과 브랜드의 5년 계약은 재앙이며, 한국 정부는 자기 발에 총을 쏜 셈(shoot itself in the foot)”이라고 논평한 이유다. 갑작스런 사업 정리로 SK와 롯데에서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인 직원만 2200명에 달한다. 최민하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개정안대로 수수료가 5%로 상승하면 면세점 이익의 3분의 2가 날아가게 된다”며 “인천공항 임차료 상승과 해외 면세점 적자를 감안하면 실제 수익성 하락폭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대안 마련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면세점 법안이 국회에서 1분 만에 졸속 처리돼 시행 과정에서 물의를 빚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제도 개선 움직임은 더욱 탄력을 받는 양상이다. 정부는 특허수수료를 매출의 0.5%로 10배 인상하거나 매출액에 따라 차등화(0.5~1%)하는 대신 사업기간을 10년으로 늘리는 방안 등을 검토중이다. 현재 기획재정부·관세청·공정거래위원회·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참여해 가동 중인 ‘면세점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이달 중 개선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김현예·김경미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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