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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 휴업하고 임대료 안 받고 … 전통시장 새 단장 순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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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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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시장 상인들이 시장 현대화 공사 논의를 위해 28일 상인회 사무실에 모였다. [사진 구로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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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장(위)은 남구로시장(아래)과 같은 아케이드형 시장으로 리모델링하는 중이다. [사진 구로구청]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24일) 50년 전통의 서울 구로동 구로시장의 명물인 ‘한복거리’는 20개 안팎의 점포들이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셔터가 내려진 점포 앞 곳곳에 철골 등의 공사 자재가 놓여 있었다. 폐업한 시장 같은 풍경이었지만 열흘째 장사를 접고 있다는 김영숙(67·여)씨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현대화 사업 때문에 이렇다. 오늘은 우리 가게 쪽 지붕을 뜯는다고 해 나와봤다”고 말했다.

소통으로 갈등 없앤 구로시장
상인들 “공사 편하게 두 달간 휴업”
건물주는 “그동안 월세 안 받겠다”
함께 전국 성공사례 견학 등 효과
“잘되리라는 확신 공유해야 성공”

 구로시장 100여 개 점포 중 약 70개가 지난 14일부터 자진해 60일간의 영업 중단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10월 본격화된 ‘구로시장 현대화 공사’를 위한 협조다. 내년 4월 현대화 작업이 완료되면 2m 남짓인 시장 통로가 6~7m로 넓어지고 천장이 생긴다. 점포마다 제각기 설치한 간판은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통일된다.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가게 문을 닫은 것은 현대화를 진행하는 전통시장 중에서도 보기 드문 모습이다. 노경진 구로구청 유통관리팀장은 “저마다가 사장님인 전통시장에서는 우리 가게가 조금이라도 손해볼 것 같으면 좀처럼 협조하지 않는다. 상인들이 합심해서 ‘공사 편히 하라’고 영업을 중단한 경우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구로시장과 인접한 남구로시장은 2013년 리모델링 과정에서 ‘내 가게 앞에 기둥을 세울 수 없다’는 상인들의 반발로 아케이드 기둥 99개 중 절반을 설계도와 다른 위치에 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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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로시장이 그런 갈등을 피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이종운(74) 구로시장 상인회장은 “낙후된 구로시장이 현대화되면 지금보다 장사도 잘되고 살기 좋아질 것이라는 비전을 상인들과 끊임없이 공유했다”고 말했다. 그런 노력 중 하나가 ‘전통시장 견학단’ 구성이었다. 지난 6월 시장 현대화 공사 추진이 결정되자마자 이 회장은 견학단을 꾸렸다. 일주일에 한 번 관광버스를 대절해 상인들은 태운 뒤 수원 못골시장 등 현대화에 성공한 지방 시장에 갔다. 반 년 동안 70여 명의 상인이 모두 참가한 견학은 네 번, 부녀회원 등으로 소규모로 진행된 견학은 열댓 번 진행됐다. 이 회장은 “시장을 돌아보고, 그 시장 운영진들과 한두 시간 대화하고 온 상인회원들은 눈빛이 달라졌다. 추세에 맞게 소액결제도 카드로 받는 등 경영 마인드를 바꿔야겠다고 말하는 상인들도 늘었다”고 말했다.

 상인회 사무실에서 거의 매주 열린 점포주와 건물주간 미팅도 큰 역할을 했다. 점포주들이 현대화에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현대화되면 건물주들이 건물 임대료를 대폭 올릴 것’이라는 것이었다. 상인회는 건물주들에게 매주 전화를 돌려가며 사무실로 불러모았다. 공사 때문에 영업을 하지 못하는 시기에 임대료를 올리거나 공사 직후 임대료를 올리는 대신 현대화 이후 시장이 살아나면 장기적으로 임대료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고 건물주들을 설득했다. 상인회가 적극적으로 대화의 장을 열자 점포주와 건물주들이 수시로 찾아와 현대화 사업의 청사진에 대해 물었다. 결국, 구로시장에서는 ‘공사 때문에 영업을 중지하는 기간 동안 임대료를 받지 않겠다’거나 ‘공사 직후 임대료를 올리지 않겠다’는 건물주가 전체 70%를 넘어섰다.

 올해 현대화 공사를 시작해 완료하거나 진행 중인 서울시내 전통시장은 36곳이다. 이규각 한국지역문화이벤트 연구소장은 “오랫동안 같은 방식으로 장사해 온 전통시장 상인들은 현대화 사업을 한다고 해서 장사가 잘 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사 이후 시장이 잘되리라는 확신을 공유해야 순조로운 현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나한 기자
김해정 인턴기자(부산대 불어불문학과 4)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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