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미주대륙, 바이킹이 먼저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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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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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위의 인문학
사이먼 가필드 지음
김명남 옮김, 다산북스
576쪽, 2만8000원

『지도 위의 인문학』은 지도학(地圖學)의 역사를 다룬다. 지도학은 “지도의 작성 및 이용 방법에 관한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지도는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다. 지도학의 이모저모를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본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참신하게 세상을 읽기 위해 새로운 안경·돋보기·망원경을 구비하는 것과 같다. 1만년전 바위에 새겨졌던 지도부터, 뇌 지도, 화성 지도, 스마트폰 속으로 쏙 들어온 구글 지도까지 웬만한 것은 다 나온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독도(讀圖) 능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나 종이 지도의 미래 같은 문제도 빠뜨리지 않았다.

  저자는 ‘전시회를 한번 휙 돌아보며 구경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 개념으로 이 책을 구상했다. 전시회에 갔을 때 발걸음 순서가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이 책도 내키는 대로 읽으면 된다. 예컨대 110페이지부터 읽으면 된다. ‘빈랜드 지도’에 얽힌 논란 이야기가 나온다. 1957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빈랜드 지도’는 바이킹족이 콜럼버스보다 훨씬 전인 985년~1001년 사이에 미주대륙을 발견했다는 근거가 되는 지도다. 온갖 과학적·인문학적 방법을 동원했지만 가짜인지 진짜인지 아직도 미스터리에 휩싸인 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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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발견된 ‘빈랜드(Vinland) 지도’. 아직 그 진위 여부가 밝혀지지 않았다. [사진 다산초당]

 『지도 위의 인문학』의 내용을 바탕으로 지도 제작 역사의 테마를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3차원을 2차원으로 바꾸는 문제가 있었다. 1569년 메르카토르 도법이 이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했다. 둘째, 지도 제작자들은 지도에 시간이라는 4번째 차원까지 넣어보려고 시도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반영된 중세 유럽 지도는 예루살렘을 중앙에 위치시켰으며 에덴동산에서 십자가의 예수, 최후의 심판까지 중세인이 생각하는 ‘인류 역사’를 삽화로 보여줬다.

 셋째, 선택과 집중의 필연적인 결과는 생략과 왜곡이었다. 어리둥절한 오류도 있었다. 미국이 ‘콜럼비아합중국’이 아니라 아메리카합중국이 된 이유는 지도 제작자 발트제뮐러의 착각 때문이었다. 발트제뮐러는 사실 그리 유명하지도 않았던 이탈리아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1454~1512)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넷째, 지도의 역사는 국제정치, 제국주의, 서구 팽창의 역사이기도 하다. 르네상스 때의 베네치아나,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아틀라스(atlas), 즉 지도책(地圖冊)이 크게 유행한 것도 이들 해상 강국의 위용과 밀접하다. 제국주의 열강에게 지도는 식민 통치의 도구였다.

 저자인 사이먼 가필드는 영국의 저널리스트·작가다. 런던정경대(LSE) 출신인 저자는 폰트(활자체)에 대해 다룬 『내 타입이야(Just My Type)』 등 10여 권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다. 가필드가 이 책을 통해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세상 속 우리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S BOX] 1622년 지도엔 캘리포니아는 섬, 저니는 ‘노새타고 하루 갈 거리’

『지도 위의 인문학』에 나오는 신기한 사실을 뽑아봤다.

 ▶ 1622년 스페인에서 발행한 지도에 캘리포니아는 섬으로 그려졌다. 1865년 일본에서 나온 지도에서도 섬이다.

 ▶ 미대륙을 ‘아메리카’라 부르는 이유는 ‘아프리카’와 어울리기 때문이었다는 설이 있다.

 ▶ 여정(旅程)을 뜻하는 영어 저니(journey)는 원래 ‘노새를 타고 대충 하루에 갈 만한 거리’를 뜻했다.

 ▶ 1798년 영국 지도 제작자 제임스 레넬은 서아프리카에 ‘콩 산맥(Mountains of Kong)’을 넣었다. 이 가상의 거대 산맥은 1928년 『옥스퍼드 고등 아틀라스(Oxford Advanced Atlas)』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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