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지역 '산사태 비상'…폭우 속수무책, 나무 없고 지반 약해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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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산불→폭우=산사태’.

국립기상청 LA지부의 에릭 볼트 선임 기상학자는 23일 통화에서 “엘니뇨의 위험성은 폭우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작은 폭우들이 3개월 동안 연달아 올 수 있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빗물이 지하에 침수될 시간을 주지 않아 산사태와 홍수 위험성을 높인다는 이야기다.

사상 최강의 엘니뇨 현상이 남가주에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로 인한 폭우로 지난 수년간 산불이 발생한 지역을 중심으로 산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벤투라 카운티 카마리요 스프링스 지역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해 바위와 흙더미가 주택 10여 채를 덮쳤다. 일부 주민들은 집 안에 갇혀있다가 간신히 구조됐고, 건물과 차량 등이 심하게 파손됐다. 당시 말리부 해안 인근 주택에서도 차량 5대가 흙더미에 파묻혔다.

이처럼 산사태가 발생하는 이유는, 오래된 가뭄으로 인해 2013년 산불로 이 지역 2만4250에이커가 다 탔었기 때문이다. 산불로 토양을 지탱할 나무가 없고, 지반이 매우 취약해지면서 바위와 토사가 그대로 밀려 내려오게 됐다는 것이다. 가뭄이 오기 전인 1998년~2005년에는 폭우가 닥쳤음에도 나무 뿌리가 토양에 깊숙이 박혀 있었기 때문에 산사태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엘니뇨로 인해 남가주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역 소방국들은 비상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에 나섰다. 산사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헬리콥터를 비상 대기 상태로 가동하고 있으며, 불도저를 비롯한 각종 중장비도 대기중이다. 토사가 인근 주택가나 학교로 밀려올 것을 대비해 모래주머니도 다량으로 준비하고 있다.

당국은 카마리요 스프링스 지역 외에도 실버라도 캐년ㆍ글렌도라ㆍ샌타클라리타ㆍ시미밸리를 산사태 위험 지역으로 분류했다.

원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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