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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화가 김종학의 겨울

중앙일보

입력

한 달 전쯤, 김종학 화가의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몇 달 전부터 화가와 함께 부산에서 기거한다고 했다.

곧 전시가 있을 예정이니 부산에 한번 다녀가라고 했다.

난데없이 웬 부산이냐고 물었다.

화가의 터전은 설악산이며, 거기서 작업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에 던진 질문이다.

화가의 일생을 보여주는 ‘아카이빙 프로젝트(Archiving Project)’를 위해 몇 달 전부터 부산에서 작업해 왔다는 답이 돌아왔다.

작업 스튜디오까지 꾸며서 화가의 작업현장을 공개한다고 했다.

더구나 이번 전시의 주제가 ‘설경(Winter Solitude)’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설경’이란 말에 귀가 솔깃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김종학의 편지』란 책을 집어들었다.

몇 점의 설경을 책에서 봤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책 속의 설경, 왠지 그와 닮아있었다.

책 속의 그림이 아니라 실제 그림이 보고 싶어졌다.

화가는 오래전부터 겨울 풍경을 그려왔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은 온통 그의 ‘야생화’에 집중해 있었다.

오죽하면 그를 두고 ‘꽃의 화가’라 하지 않는가.

아마도 설경만을 전시하는 것은 처음이지 싶었다.

그날부터 마음은 온통 부산으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김종학의 야생화’가 아닌 ‘김종학의 겨울’로 향했다.

전화 통화 후, 이십여 일이 지나서야 부산행 기차를 탔다.

카메라 가방에 ‘김종학의 편지’를 넣었다.

기차 안에서 다시 들춰 볼 요량이었다.

이 책은 2012년 5월 1일부터 항상 사무실 책상 위에 있었다.

그와 처음 만나 사진을 찍은 날부터 책상 위를 떠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손닿을 거리에 두고 시시때때로 들춰보던 대여섯 권의 책 중 하나였다.

화가가 28년간 딸과 아들에게 보낸 그림편지를 묶은 책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들 가족의 사사로운 편지인데 묘한 울림이 있었다.

가장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이니 진솔했다.

고스란히 배어있는 작가로서의 고뇌, 철학은 내게도 위로로 다가왔다.

‘김종학의 편지’를 기차에서 다시 읽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떠나기가 죽기보다 싫었지만 나가달라는 엄마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됐다. 아빠는 속으로 울었단다. 그때 설악의 별은 왜 그다지도 낮게 떠서 빛나고 있었던지.”

“‘너희 아빠는 화가였는데 그림도 몇 장 못 그린 시시한 인간이었구나’라고 비난을 받으면 죽어서도 난 눈을 감지 못 할 것 같았어. 100장만이라도 그릴 때까지 억지로라도 살자며 입술을 깨물고 그림을 그린 것이 오늘날 나비, 꽃 그림을 나오게 했단다.”

“예전에 힘이 들었을 때는 꽃과 나비 밖에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이 없어서 그것만 그린 거야. 자연이 없으면 사람도 없고 예술도, 미술도 없는 거야. 우리는 모두 흙을 먹고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지.”

“‘노자는 道(도)가 道일 때 도道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풀이하자면 ‘길이 길일 때 길이 아니다’라는 뜻이야. 아빠가 길이 없는 산을 오르고 길이 없는 숲을 뒤지다 벌에 쏘이고 나무에 찍혀 다치는 이유도 ‘길이 길일 때 길이 아님’의 철학에 있단다.”

마흔둘에 쫓겨나듯 설악산으로 간 무명화가, 못 다한 아비 노릇을 그림과 편지로나마 하고자 했다.

어느새 여든을 목전에 둔 아비는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화가가 되었고 그의 딸은 아버지의 삶과 작품을 전시 기획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부산에 도착했다.

해운대 달맞이길에 있는 조현갤러리를 찾아갔다.

먼저 작품부터 보았다.

나를 부산으로 오게 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그 다음은 ‘Archiving Project’였다.

나고 자라고 그린 그의 일생을 정리한 것이었다.

그 중에는 내가 찍은 김종학화가의 사진 한 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꽃을 물고 눈을 감은 사진이다.

2012년 5월 1일 처음 만난 날 찍었다.

딸이 내게 설명을 했다.

“이번 Archiving 중 ‘난 사람도 꽃이라 생각한다’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꽃을 입에 문 아빠의 사진이 딱 그렇게 표현된 거 같았어요.”

난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답했다.

사실 사진을 찍을 땐 ‘사람도 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꽃이 오늘날의 화가 김종학을 있게 한 이유였기에 입에 물어달라고 부탁을 했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김종학화가를 만나러 작업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로 작업 중인 겨울 작품이 있었다.

화가에게 겨울의 의미를 물어봤다.

“모든 잎을 다 떨어내고 뼈만 남지. 그러면 자연의 골격이 그대로 보여. 저 눈 속에 묻혀 다 죽은 듯해도 봄이 오면 꽃으로 다시 살아나지. 꽃에도 ‘기운생동’이 있지만 겨울에도 ‘기운생동’이 있어.”

책에서 설경을 보고 어쩐지 화가와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잎 다 떨어낸 뼈대로 봄의 부활을 기다려 온 그의 삶, 그의 겨울 작품과 하나로 보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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