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여야, 합의문 없이는 끝내지 않겠다는 '콘클라베 정신'으로 협상 임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오늘 오후 국회에서 만난다. 선거구 획정과 쟁점 법안에 대한 일괄 타결을 시도하기 위해서다.

선거구 획정은 이미 법정 시한(11월13일)을 한달 이상 넘긴 상태다. 경제활성화법등 쟁점 법안은 여야가 합의 처리키로 약속하고도 정기국회 회기(12월2일)를 넘기고 말았다. 여야가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벼랑끝 전술을 써가며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어서다.

이런 국회를 바라보는 민심은 폭발 직전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자신들의 유불리만을 따지는 이들을 보면서 분노를 넘어 자괴감마저 느낀다. 법안 처리 지연에 대한 반성은 커녕 20여분만에 협상장을 박차고 나오는가 하면 협상장 밖에선 “같은 당인데도 대표와 원내대표간 입장이 다르다”고 상대당을 험담하기 바쁘다.  이러고도 국회가 국민의 대표 운운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국회의 직무 유기는 자칫 민주적 제도의 작동을 멈추게 할 수도 있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오는 31일까지도 선거구 획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회의원 선거를 할 수 있는 선거구 자체가 없어지게 된다. '입법부 공백'의 비상사태속 '선거 아노미'의 대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현역의원보다 50m 뒤에서 뛰는 100m 경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태생적 불리함 속에서 레이스에 뛰어든 정치신인들은 선거구 조차 정해지지 않아 이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정보고서를 제한 없이 뿌릴 수 있는 현역의원들과 달리 예비후보들은 지역구 세대수의 10%에만 홍보물을 발송할 수 있는데, 지역구 확정이 지연되면서도 이마저도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니 "수갑 채워놓고 공정하게 권투하라는 거냐”는 비난과 성토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이보다 더 심각한 건 민생 피해다.노동개혁 관련 5개 법안과 서비스발전기본법안,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안, 테러방지법 같은 중요한 법안이 국회에서 발목이 잡히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비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장기 불황의 깊은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게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런데도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이나 기업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법안들이 국회에서 수개월씩 잠자고 있으니 기막힌 노릇이다.

최악의 경우,이들 법안이 처리되지 않아 자동 폐기된다면 한국 경제가 나락의 길로 접어들 수도 있다. 오죽하면 경제계등 일각에서 '경제 비상명령'이라도 내려달라는 얘기가 나오겠는가.

상황이 이런데도 국회 주변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어제까지도 “여야 지도부의 결단만 남겨뒀을 정도로 논의가 진전돼 있다"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는 우리의 정치문화 때문에 합의는 또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나왔다. 아직도 샅바싸움과 힘겨루기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듯하다.

19대 국회는 잦은 정치적 대결과 낮은 법안 처리등으로 "역대 최악"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이런 오명에서 벗어나 국민들에게 속죄하는 길은 대타협 정신을 발휘해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 외에는 없다. 새로운 교황을 정한 뒤에야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에 흰 연기를 피워올리는 바티칸의 콘클라베처럼 여야 지도부 4명도 "합의문 없이는 협상장을 나가지 않겠다"는 각오로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중앙선데이 사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