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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도 버거운 수술비 … 간 이식 포기 환자 잡아준 ‘손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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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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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벼농사를 지어온 농부 윤준영(55·경기도 안산)씨는 올해 농사를 포기했다. 6년째 앓아온 간경화(간경변증·간 조직이 단단하게 굳어지는 질환)가 악화되면서다. 간이 제 기능을 못해 복부의 혈관에 있던 수분이 빠져나와 고이면서 배가 부풀어 오르는 증상까지 생겼다. 윤씨는 “복수가 심하게 차올라 만삭 임신부보다 배가 더 부를 정도였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병원에 가서 복수를 빼는 시술을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배에 관을 꽂아야 해서 굉장히 고통스러운 시술인데 1년 반쯤 반복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엉망이 됐다”고 말했다.

‘간경화 6년’ 농사 접은 50대
“제 간을 …” 아들도 나섰지만
치료비 부담돼 엄두도 못 내

“소득 30% 이상 재난적 의료비
빈곤층·중산층 구분 있겠나”
공동모금회 지원사업 큰 도움

 병원은 “이대로는 안 된다”며 간 이식 수술을 권유했다. 그러자 큰아들 병찬(27)씨가 “내 간을 아버지에게 이식해달라”고 나섰다. 조직 검사를 해보니 이식에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윤씨는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는“아버지가 돼서 나 살겠다고 자식 몸에 칼 대는 게 죽기보다 싫었고 수술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윤씨는 오랫동안 병을 앓으면서 농사 규모를 많이 줄였지만 지난해까지 2만 평(6만6115㎡)의 논을 일궈 매년 쌀 1000가마(80t)를 수확했다. 그래도 수술비 수천만원은 큰 짐이었다.

망설이던 윤씨에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공동모금회)의 의료비 지원 사업인 ‘생명의 손길’이 닿았다. 병원 사회복지팀의 소개 덕분이었다. 윤씨는 지난 6월 11일 아들의 간 일부를 이식받았다. 수술·검사비 6000만원 가운데 2000만원을 지원받았다. 그 뒤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몸 상태가 나아졌다. 윤씨는 “생명의 손길이 아니었으면 수술할 엄두도 못 내고 죽을 날만 기다렸을 것”이라며 “내년부턴 다시 농사일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가계소득 중 식료품비를 제외한 가구 지출에서 의료비 비중이 30%를 넘어가면 ‘재난적 의료비’가 발생한 걸로 본다. 생명의 손길은 재난적 의료비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사업이다. 2013년 8월 시작된 뒤 도움을 받은 사람은 1만9076명이다.

 암·심장질환 등 중증질환이나 희귀난치성질환을 앓는 최저생계비 200%(1인 가구 기준 124만원) 이하 저소득층이 우선지원대상이다.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 200% 이상~300%(1인 가구 기준 186만원) 이하에 해당하는 중산층도 연소득의 30% 이상 의료비로 지출한 경우엔 지원(1인당 최대 2000만원)받을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따르면 4가구 중 한 곳(23.5%)이 1년 이상 가계 지출의 30~40%를 의료비로 쓰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현웅 연구위원은 “재난적 의료비는 빈곤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산층이라도 가족 중 한 사람이 중병에 걸리면 가세가 기울기 마련이다. 의료 사각지대를 줄이고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차원에서 생명의 손길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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