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느다란 몸매, 빡빡 깎은 머리에 뭉툭한 코. 잘생긴 얼굴이 아니지만 그의 곁에는 항상 금발 미녀가 동행하고 있다. 남자 테니스 세계랭킹 38위의 라덱 스테파넥(25.체코.사진).
스테파넥은 27일 오전(한국시간) 영국 윔블던에서 열린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인 윔블던(총상금 9백37만3천9백90파운드, 약 1백89억원) 남자단식 2회전에서 스콧 드레이퍼(호주)를 3-0(7-6, 6-3, 6-1)으로 완파하고 3회전(32강)에 올랐다.
그도 지금은 1백만달러(총상금)를 벌어들인 부자지만 한때는 1백달러짜리 선수였다. 테니스 골수 팬이라면 3년 전 한국을 찾았던 초보 프로선수 스테파넥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스테파넥은 2000년 11월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에서 열린 삼성증권 남자 챌린저대회에 참가했다. 당시 세계랭킹 2백52위였던 스테파넥은 단식 결승에서 이형택(삼성증권)에게 0-2(4-6, 4-6)로 패해 준우승했다.
그때 스테파넥은 '공짜손님'으로 유명했다. 대회장의 라켓숍에서 수십 차례나 외상으로 라켓줄을 맸다. 한번에 5만~6만원하는 줄값을 감당하기 힘들다며 상금을 딴 뒤 갚겠다고 통사정을 했다.
체코의 광산촌 카르비나 태생인 스테파넥은 그 시절 두세 벌의 여벌 옷만 갖고 전 세계를 떠돌며 챌린저나 퓨처스 대회에 출전, 1백~3백달러의 소액 상금으로 생활하던 가난한 선수였다. 다행히 삼성 챌린저에서 준우승, 상금으로 4천2백달러를 챙겨 라켓숍의 빚을 갚았다.
그러던 스테파넥에게도 양지가 찾아들었다. 벼락처럼 내리치는 서비스, 긴 팔을 이용한 발리가 안정감과 정교함을 갖춰가면서 지난해 US 오픈 복식에서 준우승을 하는 등 성적이 급상승했다. 체코에서는 스테파넥을 동료 지리 노박(10위)과 함께 영웅으로 꼽고 있다.
한편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윔블던 여자단식 3회전 진출에 도전했던 조윤정(삼성증권.47위)은 2회전에서 스베틀라나 쿠즈넷소바(러시아.34위)에게 0-2(6-7, 4-6)로 패해 꿈을 이루지 못했다.
김종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