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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한국전쟁의 진실과 수수께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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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진실과 수수께끼/A.V.토르쿠노프 지음, 구종서 옮김/에디터, 1만8천원

6.25 전쟁에 대한 수수께끼가 점차 풀려 가고 있다. 냉전이 해체된 1990년대 이후 구 소련의 비밀문서가 하나 둘씩 공개되면서 속도가 붙었다.

미국과 남한의 자료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기존의 수준에다 전쟁의 한 당사국인 구 소련의 자료가 보태져 나온 결과다. 그 성과중의 하나가 신간 '한국전쟁의 진실과 수수께끼'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러시아 국제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A. V. 토르쿠노프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 교수가 한국전쟁을 전후해 스탈린-김일성-마오쩌둥 사이에 오간 극비전보문서들을 추적해 2000년에 펴낸 '수수께끼의 전쟁, 한국전쟁 1950~53'을 번역했다.

책의 대부분을 비밀문서의 시기별 조합으로 구성한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전쟁은 김일성의 끈질긴 요청에 따라 스탈린이 허용하고 마오쩌둥이 동의해서 남한에 대한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비롯된 것"이라고. 이는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한 기존의 '수정주의'시각이 일면적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수정주의'시각은 '한국전쟁의 기원'(1981년)을 쓴 브루스 커밍스 등을 대표로 80년대 이후 남한의 소장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수정주의는 한국전쟁을 한반도의 내전(內戰) 혹은 민족해방전쟁 연장선상에서 분석하면서, 30년대 이래 한반도에서는 수많은 갈등 상황이 이어졌기에 누가 1950년 6월 25일에 총을 쏘았는지는 중요치 않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미국과 남한의 '남침 유도설'로 이어지면서 궁극적으로 북한의 전쟁 책임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더욱이 이러한 커밍스의 학설은 당시 남한의 군사독재 상황과 맞물려 한국학계에 상승작용을 불러 일으키며 수정주의에 입각한 현대사 연구가 붐을 이루게 했다.

하지만 냉전의 붕괴와 함께 북한의 초대 소련 대사를 지낸 스티코프의 '스티코프 비망록'과 같은 소련측 기밀자료가 공개되고, 한국전쟁의 국제전적 성격을 밝힌 연구로 윌리엄 스톡의 '한국전쟁의 국제사'(1995)와 박명림 연세대 교수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Ⅰ: 결정과 발발'(1996)'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Ⅱ: 기원과 원인'(1996) 등이 속속 간행됨에 따라 한국전쟁이 한국사회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발발했다는 수정주의 시각은 점차 그 입지가 좁아지게 되었다.

신간 '한국전쟁의 진실과 수수께끼'역시 소련-중국-북한 사이의 긴밀한 연락 속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수행됐음을 보여주며 한국전쟁의 국제적 성격을 부각시킴으로써, 커밍스류의 수정주의 학설을 다시 수정하게 하는 일련의 흐름 속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토르쿠노프 교수의 극비문서 추적에 따르면, 당초 스탈린은 김일성의 남침 계획에 대해 미국과 일본의 개입을 우려해 반대했지만, 마침내 중국의 지원을 전제로 남침을 허용하게 된다.

그리고 중국은 소련의 전쟁물자 및 장비 지원과 함께 미국이 중국을 침공할 때 소련이 중국을 구원한다는 보장을 약속 받고 김일성의 남침에 동의한다.

이 책을 번역한 구종서(정치학 박사, 중앙일보 논설위원.국제부장 역임) 씨는 "한국전쟁 수행을 둘러싸고 소련-중국-북한의 관계가 수직적이었으며, 스탈린이 마오쩌둥에 이어 김일성에게 세세한 전투과정, 종전(終戰) 결정, 그리고 휴전의 조건까지 지령하고 관여한 과정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은 미국과 일본에서 번역 출판된 영어.일어판을 저본으로 번역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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