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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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아리엘 도르프만.아르망 마텔라르 지음, 김성오 옮김, 새물결, 1만3천원

이 책을 읽기 전에 알아두어야할 것들. 이 책은 1971년 칠레 노동혁명 당시 반미.반자본의 열기가 팽배하던 분위기 속에서 출간됐으며 73년 9월 피노체트의 군부 혁명 이후에는 한꺼번에 불태워지는 등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는 것.

또 저자들이 붙잡은 화두, '도널드 덕'은 미국의 문화 산업인 디즈니의 상징이자 미 제국주의와 같은 얼굴이라는 것이다.

소설가이자 시인.극작가.문학평론가인 아리엘 도르프만(61)과 사회학자 아르망 마텔라르(67)는 문화상업주의, 문화 제국주의에 반기를 들어온 인물들이다. 두 저자는 먼저 도널드 덕의 가계도부터 따진다.

디즈니 만화 주인공들은 삼촌.이모.조카의 관계만 있을 뿐, 부모와 자녀 관계가 없다는 것. 이 관계에서는 육아에 대한 책임은 물론, 무조건적인 사랑이 개입할 틈이 없다.

도널드 덕의 중요 캐릭터 중 하나인 스쿠루지 맥덕은 탐욕스러운 백만장자로 그려진다. 조카들에게 보물을 찾게 만들고는 푼돈 몇 닢을 쥐어주는 게 고작이다. 가지 말라는 댄스 파티에 간 조카딸 데이지에게 화를 내는 티지 이모는 이렇게 말한다. "유언장에서 네 이름을 빼겠다."

저자들은 이렇게 자본으로만 이어져 있는 관계를 미국과 제3세계로 대입시킨다. 또 디즈니 주인공들이 고대 유물을 찾아나서는 장면도 소개한다.

여기에서 고대 유물은 토착 원주민의 소유가 아니다. 만화는 언제나 과거 문명이 철저하게 파괴됐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발굴용 삽을 가지고 먼저 도착한 사람은 누구나 횡재한 것을 집에 가져갈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의미다. 저자들이 발굴자 도널드 덕의 얼굴에 '뻔뻔한' 미국을 대입시키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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