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컬러 전투형으로 바꾼 '독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골을 넣어 흐뭇한 미소를 지어야 할 장면에서조차 그의 얼굴은 불만으로 가득하다. 만족을 모르는 사나이, 김상열(48.사진)여자하키대표팀 감독이 '일'을 시작했다. 20일 시작된 제4회 KT컵 국제대회(부산)에서 한국을 결승에 올리면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겨냥한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한국의 세계랭킹은 5위지만 최근의 주요 대회에서는 강호들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세계랭킹 2위 네덜란드(5-0)와 3위 호주(1-0)를 이기고 4위 영국(2-2)과 비겼다. 성적 못잖게 팀 컬러가 '결과' 중심의 전투형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 변화를 주도한 사람이 김감독이다.

김감독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한국 남자팀을 은메달로 이끌어 세계 언론이 '기적'이라고 대서특필하게 만들었다. 당시 한국 남자팀은 수비에 집중하면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스피드로 역습해 승부를 결정지었다.

2001년부터 여자팀을 맡은 김감독은 자신의 컬러를 고집했다. "여자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도, 지난해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중국에 금메달을 내준 뒤 쏟아진 비난에도 요지부동이었다.

김감독은 늘 자동제어 시스템이 장착된 첨단무기처럼 팀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이기는 팀'을 원한다. 이런 팀을 만들려면 당연히 시간이 필요하다. 김감독은 현재의 전력 수준에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다. 그는 여자팀을 맡으면서 목표를 묻자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라고만 대답했었다. 그러나 그의 꽉 다문 입은 분명히 '금메달'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은 26일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경기에서 0-2로 패해 3승1무1패를 기록했다. 결승 티켓을 따낸 후 긴장이 풀렸는지 경기 내용도 좋지 않았다. 영국과의 결승전은 27일 벌어진다.

허진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