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포획이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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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부가 그릇된 정책이나 규제를 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정학이나 정책학의 주요 연구대상 중 하나다.

상식적인 해답으론 역시 무능과 부패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능력이 없어 잘못된 정책을 만드는가 하면 부패한 탓에 의도적으로 옳지 못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더 본질적인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정부규제의 효과에 대한 연구로 198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조지 스티글러는 이를 날카롭게 집어냈다. 71년 발표한 '규제의 경제이론'이라는 논문에서 그는 듣기에도 생소한 '포획이론(Capture Theory)'을 제시했다.

이 이론은 규제를 받는 대상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부를 이용하려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고도의 전문분야에서 정부는 이익집단의 주장과 설득에 넘어가 휘둘리기 쉽다고 한다.

'포획'이란 말도 정부가 특정 집단에 사로잡힌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부패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익집단은 뇌물이 아니라 전문성이나 정보를 통해 정부를 사로잡기 때문이다.

또 형편없는 후진국이 아닌 이상 정부가 일정한 능력과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무능과도 거리가 있다. 다만 이익집단이 공무원들의 머리 위에서 논다는 게 문제다.

극단적인 경우 포획이론은 정부의 정책이나 규제를 특정한 집단이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물론 정부를 의도적으로 삐딱하게만 본다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이익집단에 사로잡히면 선의에서 마련한 정책들도 결과적으론 공익을 해칠 위험이 있다는 것이 포획이론의 경고다.

이 이론은 미국에서 독점을 조장하는 정부의 규제정책을 설명하는 데 자주 적용된다. 예컨대 의료.교통 등 경쟁보다 독점으로 흐르기 쉬운 분야가 포획이론의 주무대다.

그러나 최근의 파업사태와 정부 대응을 보면 우리나라에선 노동 분야에도 포획이론이 등장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노동문제에 훤하다는 전문가가 정부 내에 많이 포진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