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다시 쏘아 올린 '백구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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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관중석이 없는 야구장. 물론 팬들의 함성도 없다. 간간이 외치는 선수들의 "파이팅" 소리만 텅빈 운동장에 메아리칠 뿐.

주말 사회인 야구가 벌어지는 학교 운동장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구장과는 비교할 수 없이 초라하다.

그런데 그 풍경 속에 5년 전 손꼽히는 유망주 투수로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김병일(27)씨가 있었다. 1998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40만달러(약 4억7천만원)에 계약할 때만 해도 金씨의 인생은 화려한 장밋빛이었다.

하지만 金씨에게 미국에서의 2년은 시련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어깨가 아파도 정확히 표현할 수 없었다. 돌봐주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던 에이전트는 연락을 끊기 일쑤였다.

미국인 감독은 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를 나무라기만 했다. 운동장에서 돌아오면 불꺼진 아파트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텅 빈 공간에서 金씨는 한없이 약해져만 갔다. 통증을 참고 던진 오른쪽 어깨는 결국 1년 만에 탈이 났다. 수술을 받고 재기를 노렸지만 감독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2년 만의 방출이었다.

어깨에 커다란 수술 자국만을 남긴 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울고 또 울었다. 자신의 잘못이라기보다 주위의 무관심 때문에 꿈이 무너졌다는 생각에 더 서러웠다.

국내에 돌아온 뒤에도 金씨는 좌절의 충격 속에서 2년을 더 패배감에 젖어 살았다. '야구'라는 말 자체가 싫었다. 우연히 프로야구 화면이 시야에 들어오면 그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 선후배들의 모습에 고개를 돌려야 했다.

그러던 그가 야구공을 다시 잡았다.

미국에서 돌아온 뒤 시작한 PC방 사업이 자리를 잡고 정신적으로도 좌절에서 벗어나면서 야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생겼던 것이다.

마침 가까운 친구들도 "주말에 야구하는 모임이 있는데 한번 나와 보라"고 권유했다. 결단이 쉽진 않았다. 몸이 근질거리기는 했지만 수술한 어깨가 다시 아플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삼고초려(三顧草廬)'했을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처박아 뒀던 글러브를 매만지고 있었다.

金씨는 요즘 주말이면 사회인 야구 '야코리그' 산하의 '스트라이커스'에서 뛴다. 야구를 사랑하는 동호인들의 모임 스트라이커스는 그에게 잃었던 꿈을 찾아줬다. 리그 규정상 고교.대학선수 출신은 투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외야수로 뛴다. 하지만 백구를 쫓다 보면 화려했던 그 시절의 꿈을 다시 꾸고 있는 기분이 든단다.

사회인 야구로 용기를 되찾은 金씨. 그는 이제 또 다른 도전도 준비 중이다. 어깨가 다 나았다는 확신이 서면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어 내년 프로야구 신인 지명에 참가해 볼 작정이다.

"'빅 리거'의 꿈은 좌절됐지만 야구와 인생의 꿈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진행형이잖아요."

글=이태일 야구전문기자.사진=임현동 기자

*** 김병일은…

▶생년월일=1976.3.9 ▶출신교=중앙고-동국대^유형=오른손 정통파 투수 ▶주무기=빠른 공.슬라이더 ▶신장.체중=1m88㎝.110㎏ ▶경력=1998년 국가대표상비군 선발, 같은 해 11월 계약금 40만달러에 국내 12번째로 미국 프로야구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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