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나침반] 지방방송, 스타 키워야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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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사이에 지역방송인들을 만날 기회가 두 차례나 있었다. 지난 토요일(6월 21일) 울산MBC에서는 지방방송 사상 처음으로 개그맨 선발대회가 열렸다. 노래자랑이나 퀴즈시합은 많아도 코미디 연기자를 뽑는 건 일찍이 없던 일이다. 울산 지역을 중심으로 영남권의 웃음 고수들이 대거 모여들었다.

한 번 하고 치우는 선심성 주민위안잔치가 아니라는 걸 방송사가 미리 고지한 까닭이다. 20여년 동안 쇼 코미디 프로를 연출했던 신종인 사장은 그날 본선에 오른 8팀 전원을 지역에서 제작하는 프로그램에 투입해 키워보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밝혔다.

그는 노래 한 곡을 그림으로 옮기기 위해 백사장에 백대의 그랜드피아노를 준비해 달라고 주문한 이력의 연출가다. 그의 도전정신과 저돌적 추진력이 울산 MBC의 이 의미있는 실험에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지방방송 좀 끄라는 말을 회식자리에서까지 들어야 하는 지역방송인들의 심정은 고단하고 처량하다. 과연 지방엔 무엇이 아쉬운지 곰곰이 따져 봐야 한다. 사람 수가 적고 돈이 부족하다. 그러나 화끈한 아이디어나 불타는 정열마저 달아나란 법은 없다. 지역 방송인들을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깜짝 놀랄 만한 아이디어가 수두룩하다.

지방방송을 즐거운 마음으로 켜도록 하려면 양(고릴라)보다 질(게릴라)로 승부하는 게 낫다. 먼저 활성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을 하나하나 제거해야 한다. 전체 편성의 13%를 할당받은 울산의 경우 오후 7시대는 모두 자체 제작프로로 채워진다. 시청자의 반응은 과연 어떨까. 격려보다는 왜 서울에서 하는 '전파견문록'을 못 보게 막느냐고 항의하는 시청자가 더 많다고 한다.

대책은? '전파견문록'보다 더 재미있고 도움되는 프로를 만들면 된다. 지방시청자의 욕구를 철저하게 조사한 후 아이디어 개발에 시간과 정열을 집중 투자해야 한다. 중앙 일간지와 당당히 겨뤄 지분을 확보한 지역신문의 특성화 전략도 참고할 만하다.

지난 금요일(6월 20일)엔 전국 MBC 아나운서들의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안동의 새내기 황지경 아나운서에게서 '어떻게 하면 지방방송이 살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막막한 감은 있지만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지역의 스타가 탄생해야 한다.

그 사람을 보기 위해 기다렸다가 TV를 켜는 시청자가 늘어야 한다. 개성과 전문성, 게다가 애향심까지 갖춘 지역 스타들이 쑥쑥 자라나 그 지역의 시청자를 한껏 매료시켜야 한다. 둘째 방송설비를 보완해야 한다. 특히 조명에 돈을 좀 써야 한다. 때깔이 다르다는 말은 그 인물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빛의 양이 부족한 경우가 태반이다.

칙칙한 화면은 시청자의 접근을 망설이게 할뿐만 아니라 지역 발전의 전망마저도 어둡게 한다. 셋째 그 지역의 특성을 살리는 문화행사를 과감하고도 지속적으로 펼쳐라. 전국, 아니 세계가 주목할 만한 이벤트를 사운을 걸고 추진하라. 마산MBC가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를 대규모로 개최한 것도 좋은 예다.

지방대학이 스러져간다고 아우성인데 차제에 지방방송과 지방대학이 연대해 구겨진 지방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펼치는 건 어떨까. 지역의 아이디어가 반짝반짝 빛나고 지역방송인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살아있을 때 '지방방송 좀 꺼라'는 주문도 옛말이 될 것이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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