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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법정에 서는 『제국의 위안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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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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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논설위원

조선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은 겨레의 자랑이자 아쉬움의 공간이다. 32만여 점의 자료 중엔 하루같이 왕의 숨결까지 적은 『승정원일기』 3200여 책을 비롯, 국보 『조선왕조실록』 등이 포함돼 있다.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방대한 기록은 없다.

 아쉬운 건 이런 보물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는 거다. 얼마 전 “들쳐보지도 않은 책이 숱할뿐더러 본격적으로 연구된 것도 10%에 불과할 것”이라는 한 사학자의 한탄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슬퍼할 건 없다. 꺼내 볼 비화가 무궁무진하다는 얘기 아닌가. 어쨌거나 새 사실이 나오면 평가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유약했다던 고종이 딱 그렇다. 그가 조선 독립을 주장하며 유럽에 보낸 편지가 발견되면서 재평가가 이뤄지는 분위기다. 거북한 얘기도 없을 수 없다. 소설 『칼의 노래』 출간을 계기로 이순신이 여인을 탐했다는 설이 퍼진 게 그런 예일 거다.

 걱정은 옛 인물의 허물을 다룬 내용이 나오면 당장 난리가 난다는 거다. 조상 욕보인다고 후손들의 고소가 줄을 이을 게 뻔하다. 무죄가 난들 몇 달 불려다니면 당할 장사가 없다. 이런 판에 어떻게 가면 쓴 친일파를 색출하고 역사적 진실을 바로 세우겠나.

 위인에 대한 험담이 나오긴 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에이브러햄 링컨에 대한 책은 1만6000여 종에 이른다. 이 중엔 그를 대선 빼고는 모든 선거에서 진 성격파탄자로 그린 책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요즘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학문의 자유 논란이 한창이다. 자신들을 ‘자발적 매춘부’로 묘사했다고 분노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박 교수를 고소해 결국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자 지식인 190여 명은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며 처벌 반대 성명을 지난 2일 발표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로서는 모욕감을 느낄 게다. 하지만 공권력이 박 교수를 단죄하려는 세태가 바람직한지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그의 주장을 법정 아닌 학문의 광장으로 가져가 그곳에서 피나게 토론하는 게 옳지 않나.

 1970년대 말 프랑스의 불문학자 로베르 로리송이 “유대인을 학살했다는 가스실은 없었다”고 썼다 처벌받게 됐다. 그러자 미국의 대표적 지식인인 노엄 촘스키가 구명에 나선다. 자신이 유대인인데도 말이다. 그는 당시 이렇게 역설했다. “그의 주장이 무엇이든 표현의 자유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