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經之訓 -일경지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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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호 27면

위현(韋賢)은 서한(西漢)시대 사람이다. 기원전 148년에 태어나 기원전 67년에 사망했다고 전해지는데 당대 학자이자 또 정치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의 고조부 때 맹자(孟子)가 태어난 추현(鄒縣)으로 이사를 왔으며 위현은 시경(詩經)과 예기(禮記), 상서(尙書) 등에 매우 능통해 ‘추로 지방의 큰 선비’라는 뜻인 추로대유(鄒魯大儒)라 불렸다.


명성이 자자해지자 궁궐로 부름을 받아 한(漢)나라 소제(昭帝)에게 시경을 가르치는 스승이 됐다. 소제가 사망한 후 그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선제(宣帝) 때엔 관리로서의 지위가 계속 올라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소리를 듣는 승상의 위치까지 오르게 됐다. 그러나 천성이 순박하고 이익을 탐하지 않는 바른 자세는 변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네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좋은 말을 들었다. 큰 아들 방산(方山)은 지방 현령을 지냈으며, 둘째 아들 홍(弘)은 동해(東海) 태수(太守)에 올랐다. 셋째 아들 순(舜)은 고향에 남아 조상의 묘를 지켰고 막내 아들 현성(玄成)은 훗날 아버지와 같은 승상의 자리에까지 오르니 한 집안에서 대를 이어 재상을 배출하는 진귀한 기록을 남겼다. 중요한 건 단지 이들이 벼슬길에 나섰다는 게 아니라 바른 행실을 견지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향인 추로(鄒魯)의 사람들로부터 “자식에게 황금을 광주리 가득 물려주는 것보다 경서(經書) 한 권을 가르치는 것이 더 낫다(遺子黃金滿? 不如傳以一經)”는 말이 나오게 됐다.


여기서 일경지훈(一經之訓)이라는 말이 나왔다. 후손에게 재산을 물려주느니 공부를 제대로 시키는 게 낫다는 이야기다. 돈은 돌고 돈다. 천금(千金)의 재산을 남겨도 자손이 어리석으면 지킬 수 없을뿐더러 자칫 형제간 싸움의 씨앗이 되기 십상이다. 한국 재벌가에서 벌어지는 형제의 난(亂) 또한 대개는 유산 상속 다툼이 아니던가. 따라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많은 재산 남기려 애쓰기 보다는 후손이 제대로 된 사람이 되도록 인성 공부에 더 정성을 쏟을 필요가 있겠다. ‘평생 반 줄의 글도 읽지 않았으면서 오직 황금으로만 그 몸의 귀함을 산다(生來不讀半行書 只把黃金買身貴)’고 부(富)의 세습을 비난한 당대(唐代) 시인 이하(李賀)의 말이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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