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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률 73.9% 슈틸리케 월드컵 축구대표팀 감독의 리더십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지휘봉 잡은 지 1년 만에 17승 3무 3패로 외국인 지도자 최다승 기록 경신… “한국 국민의 마음에 와 닿는 축구로 성원에 꼭 보답하겠다”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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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10월 10일 파라과이와 평가전에서 한국축구를 첫 진두지휘했다. 이후 1년 동안 23경기에서 17승 3무 3패, 승률 73.9%를 기록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미 한국대표팀 외국인 사령탑 최다승 기록을 경신했다. /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갓틸리케(God+슈틸리케)’.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누구든 ‘복면가왕’이 돼라!

국내 축구팬들이 신을 뜻하는 ‘갓(God)’과 울리 슈틸리케(61·독일) 축구대표팀 감독의 이름을 합해 만든 신조어다. ‘갓틸리케’ 슈틸리케가 1년 만에 한국축구를 바꾸면서 그의 리더십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불과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한국축구에 대한 팬들의 불신은 높았다. 한국축구대표팀은 지난해 6월, 2014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인맥축구’와 ‘의리축구’ 논란 속에서 1무 2패에 그치며 탈락했다. 대표팀은 인천공항 귀국장에서 축구팬들에게 ‘엿세례’를 받았다. ‘근조(謹弔), 한국축구는 죽었다’고 쓴 현수막을 든 팬들은 “축구대표팀이 국민들에게 엿을 먹였으니 나도 엿을 던지는 것”이라며 분노했다. 홍명보 당시 대표팀 감독은 성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그해 9월 5일, 대한축구협회는 위기의 한국축구를 구할 축구대표팀 신임 사령탑에 슈틸리케를 선임했다. 이방인에게 2018년 러시아월드컵까지 한국축구의 운명을 맡겼다. 2007년 사퇴한 핌 베어벡(59·네덜란드) 전 대표팀 감독 이후 7년 만에 외국인 지도자 시대가 다시 열린 것이다.

사실 국내 축구 기자들은 처음엔 슈틸리케를 향해 의문부호를 달았다. 슈틸리케는 선수 시절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겸 수비수로 뛰며 스페인 리그 3회, 유럽축구연맹(UEFA)컵 1회 우승을 일궈냈다. 독일국가대표로 1975년부터 10년간 A매치 42경기에 출전해 1980년 유럽축구선수권 우승과 1982년 스페인월드컵 준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지도자로서는 독일국가대표팀 수석코치와 독일청소년대표팀 감독을 지내긴 했으나 또렷한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스위스와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를 맡았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독일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지만 독일프로축구 분데스리가 1부 리그팀을 지휘한 적도 없고, 2008년 이후에는 중동팀을 떠돌았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불과 1년 만에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꿨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10월 10일 파라과이와 평가전에서 한국축구를 첫 진두지휘했다. 이후 1년 동안 23경기에서 17승 3무 3패, 승률 73.9%를 기록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미 한국대표팀 외국인 사령탑 최다승 기록도 경신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쓴 거스 히딩크(재임기간 2001~2002년·14승 13무 12패) 감독의 기록을 넘어섰다. 지난 1월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과 지난 8월 동아시안컵 우승이란 결과물도 내놓았다. 국민들이 원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축구를 펼쳤다. 그래서 축구팬들은 그에게 ‘갓틸리케’란 별명을 붙여주며 박수를 보내고 있다.

지난 1월 아시안컵 준우승을 거둔 축구대표팀의 귀국길에는 엿이 아닌 꽃이 날아들었다. 비록 일정상 주로 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거둔 성과다. 그래서 슈틸리케호는 앞으로 강팀과 맞붙으며 진정한 시험대에 올라야 한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분명 1년간 한국축구를 개혁했다. 이런 ‘슈틸리케 리더십’은 대한민국 리더들을 향해서도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성공보다 실패를 먼저 고백하다

?슈틸리게 감독에게 ‘의리’는 실력이다. 그의 선수 선발 기준 역시 실력이다. /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사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한민국 차기 사령탑 1순위가 아니었다. 2001년 히딩크 감독을 주도적으로 영입했던 이용수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지난해 8월 대표팀 차기 감독 후보 군을 만나기 위해 영국 런던으로 향했다. 원래 1순위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네덜란드 준우승을 이끈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63·네덜란드) 감독이었다. 그러나 마르베이크 감독은 연봉과 체류기간 등 여러 가지 조건이 맞지 않아 협상이 결렬됐다.

그때 이 위원장은 운명처럼 슈틸리케 감독을 만나게 된다. 슈틸리케는 약속장소에 혼자 나왔다. 다른 감독들과 달리 에이전트(대리인)를 대동하지 않았다. 보통사람이라면 사실상 면접 같은 상황에서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달랐다.

이 위원장은 “면담하는데 첫마디부터 자신의 장점보다 실패했던 경험을 말하는 게 독특했다”며 “슈틸리케 감독은 ‘1989년 처음으로 스위스대표팀 감독을 맡아 브라질을 상대했는데 터치라인 옆을 선수들보다 더 많이 뛰어다녔다’고 했다. 경기 후 선수들과 같이 샤워할 만큼 친화력도 좋아 보였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바로 이 사람’이라며 무릎을 쳤다.

앞서 언급한대로 슈틸리케는 지도자로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핑계나 변명을 대지 않았다. 뒤늦게 알고 보니 지도자로 꽃을 피우지 못한 숨은 사연이 있었다.

슈틸리케는 독일 축구계에서 오랜 시간 ‘탈영병’으로 낙인 찍혔다. 슈틸리케는 1975년부터 독일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의 3년 연속 우승을 이끈 뒤 1977년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로 전격 이적했다. 당시 보수적이었던 독일 축구계는 슈틸리케를 조국을 등진 배신자로 몰아붙였다. 이후 슈틸리케는 독일대표팀 선배였던 베르티 포그츠의 도움으로 독일 각급 유소년팀을 지도할 수 있었지만, 독일 분데스리가 1부 리그팀을 맡을 기회는 결국 주어지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2008년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를 이끌고 승승장구했지만,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불과 2주 앞두고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당시 희귀병 폐섬유종을 앓던 22세 아들 미하엘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결국 미하엘은 세상을 떠났다.

이 위원장은 차기 국가대표 사령탑이 A대표팀에만 국한하는 게 아니라 유소년축구까지 아울러 축구시스템을 구축해주길 원했다. 애초 1순위였던 마르베이크 감독은 한국에 계속 체류하지 않고 네덜란드를 오가며 대표팀을 지휘하고, 세금 역시 대한축구협회 측에서 부담해주길 원했다.

반면 슈틸리케 감독은 아내와 한국에 계속 머물면서 유소년축구까지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독일 청소년대표팀 감독 시절 필립 람(32·바이에른 뮌헨), 메수트 외질(27·아스널) 등 2014년 브라질월드컵 독일 우승멤버를 발굴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 위원장에게 “한국대표팀을 맡게 된다면 감독으로서는 마지막이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이 아름다운 이별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과 1년을 함께한 이 위원장은 “슈틸리케 감독은 나보다 한국축구를 더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고맙다”고 말했다.

‘군데렐라’를 발굴한 ‘홍틸리케’

?경기 후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슈틸리케 감독. 그는 스킨십을 매우 중시하는 지도자다. /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축구팬들은 슈틸리케 감독을 ‘슈 도사’라고 부른다. 슈틸리케 감독이 발탁한 신예들이 맹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이정협(24·상주)과 이용재(24·나가사키), 김승대(24·포항), 이종호(23·전남) 등 4명이 A매치 데뷔전에서 모두 데뷔골을 터트렸다. 축구팬들은 “감독을 잘 뽑았는데 감독이 선수를 뽑는 실력도 기가 막힌다”고 박수를 보냈다.

슈 도사의 ‘뽑기 축구’는 우연의 산물은 아니다. 대표팀 훈련을 지켜보면 늘 슈틸리케 감독은 약간 절뚝거리면서 플라스틱 콘을 직접 배치한다. 이재철 대한축구협회 홍보팀 대리는 “감독님은 현역 시절 거친 몸싸움과 태클을 견뎌내다가 무릎을 크게 다쳤다. 그래서 지금도 계단 오르는 걸 힘들어 한다”며 “그런데도 주말마다 국내 축구경기를 보러 다닌다”고 전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불편한 걸음에도 불구하고 숨은 진주를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슈틸리케 감독의 점검 범위는 K리그 클래식(국내프로축구 1부 리그)에 국한하지 않는다. 2부 리그와 대학축구는 물론 유소년 축구까지 꼼꼼히 챙겨본다. 슈틸리케 감독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보좌하는 이윤규 통역은 “감독님의 행보는 언제나 열정적이다. 매달 비행기로 1천㎞ 이상을 이동한다. 차량(현대 제네시스)을 타고 국내에서 이동한 거리도 1만4천㎞가 넘는다”고 귀띔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장에 가면 VIP석 대신 일반석을 선호한다. 암행어사처럼 조용히 선수들을 관찰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슈틸리케 감독은 ‘군데렐라(군인+신데렐라)’ 이정협을 발굴했다. 이정협은 2013년 부산 아이파크에서 프로 데뷔했지만 두 시즌 간 도합 6골에 그친 무명 공격수였다. 골을 넣지 못해 ‘수비형 스트라이커’란 소리까지 들었다. 부산에서 뛸 자리가 없어 2013년 군팀 상주 상무에 입단했다.

프로축구 1·2부 리그를 부지런히 누빈 슈틸리케 감독이 ‘흙 속의 진주’ 이정협을 발견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을 보러 2부 리그 상주 경기를 다섯 번이나 직접 찾았다. 슈틸리케 감독이 지난해 12월 이정협을 깜짝 발탁한 데 이어 지난 1월 아시안컵 최종 명단에 이동국(36·전북), 박주영(30·서울) 대신 이정협을 뽑았다.

이정협은 “슈틸리케 감독님이 아시안컵을 앞두고 ‘넌 대타가 아니다. 네가 필요해서 뽑았다. 네가 잘하든 못하든 책임은 모두 내가 진다’고 힘을 실어주셨다. 나를 솔다도(soldado·스페인어로 군인)라 부르셨다”고 말했다. 이정협은 아시안컵에서 두 골을 작렬, 준우승을 이끌며 믿음에 보답했다. 이정협은 신데렐라 스토리이자 축구판의 ‘미생(未生) 스토리’를 썼다. 이정협의 기사에는 ‘나도 이정협처럼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달려보련다’란 댓글이 달렸다.

슈틸리케 감독은 ‘제2의 이정협’, ‘제3의 이정협’을 발굴하기 위해 요즘도 전국을 누빈다. 한 축구팬은 슈틸리케에게 ‘홍틸리케’란 별명을 붙여줬다.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하는 홍길동 같다는 의미다.

유리천장’은 없다

?지난 8월 어린이 축구캠프에서 꿈나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슈틸리케 감독. /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쓴 히딩크 감독은 우리 국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한국사회에 뿌리 깊은 고정관념을 깼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을 앞두고 일본 J리그 교토상가에서 뛰던 무명 미드필더 박지성(은퇴)을 발탁했다. 청소년 대표도 못해본 차두리(35·서울)를 뽑았다가 그의 아버지 차범근의 후광으로 뽑았다는 의심의 눈초리도 받았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의 활동량과 차두리의 스피드를 믿고 뽑았고, 박지성과 차두리는 2002월드컵의 4강 신화를 이끌었다.

슈틸리케 감독에게 히딩크의 향기가 난다. 슈틸리케 감독 역시 선수 발탁에 있어 나이와 이름값에 연연하지 않는다. 잉글랜드 아스널 출신 공격수 박주영을 중용하지 않는 게 대표적이다. 박주영은 국내무대 복귀 후 부상 등으로 인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유럽파는 소속팀에서 주전 경쟁에서 밀리거나 부진해도 대표팀에 뽑는 관례도 슈틸리케가 깼다.

그렇게 슈틸리케 감독은 ‘누구에게나 대표팀 문이 열려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마치 인기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과 비슷했다. 복면가왕은 복면을 쓰고 나이와 신분·직종을 숨긴 스타들이 목소리만으로 실력을 뽐내는 프로그램이다. 슈틸리케 감독도 제로베이스에서 소신껏 선수를 발탁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색안경을 끼지 않고 1년간 60명을 불러들여 점검했다. 외부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하부리그인 2부리그 소속 이정협과 이용재를 뽑았다. 포항·광양·전주 등 팔도를 누비며 김승대·이종호·이재성(23·전북)·권창훈(21·수원) 등 젊은 K리거들을 발탁해 대표팀 주축으로 성장시켰다. 지난 8월 동아시안컵 때 대표팀의 평균연령이 24.2세였다. 또 유럽에서는 중소리그라 할 포르투갈리그에서 골폭풍을 몰아친 석현준(24·비토리아 세투발)에게도 기회를 줬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나는 축구협회뿐만 아니라 회사(현대산업개발)를 운영한다. 한국 정서상 능력 있는 과장과 나이 많은 부장이 있다면 어린 과장을 키우는 게 쉽지 않다”며 “슈틸리케 감독은 위계질서를 따지는 우리나라 문화를 깨고 능력 있는 어린 선수들을 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축구대표팀에는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존재했다. 비주전 선수들은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다. 그들은 거의 굳어진 베스트 11의 훈련 파트너를 하다가, 경기에서는 벤치만 달구다 돌아가는 게 다반사였다.

반면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이 뽑은 선수들에게 고른 기회를 줬다. 만약 A매치 2연전이라면 두 경기의 베스트11을 거의 통째로 바꿨다. 그렇게 공정한 경쟁을 유도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어떤 경우에도 선수를 A급, B급, C급으로 나누지 않는다. 똑같이 대우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9일 쿠웨이트전에 교체 출전했던 지동원(24·아우크스부르크)은 9월 13일 자메이카전에 선발 출전해 4년 1개월 만에 골을 터트렸다. 지동원은 “슈틸리케 감독님이 선발명단에 자주 변화를 시도한다. 선수들도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고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모든 선수를 동등하게 대우해 열심히 뛸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누가 들어가도 제 몫을 해줬다. 그렇게 국가대표 인재풀도 자연스럽게 넓어졌다.

‘원팀(One Team)’ 이끄는 다산 선생

?슈틸리케 감독이 올해 1월 1일 호주 시드니의 숙소인 코트야드 메리어트 호텔에서 새해 첫날 아침식사로 준비된 떡국을 그릇에 담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의 또 다른 별명은 ‘다산 슈틸리케 선생’이다. 실리를 중시하는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 스타일이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실학 정신과 일맥상통한다는 뜻에서였다. 한때는 상대팀이 한국축구만 만나면 늪에 빠진 듯 허우적거리다가 패한다는 의미로 ‘늪 축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만큼 슈틸리케호는 지지 않는 축구를 펼친다. 올해 11월 11일 현재 슈틸리케 감독 부임 후 치른 총 22경기에서 총 39골을 넣고, 단 8실점했다. 경기당 평균 1.77골을 넣고 0.36실점을 했으니 웬만한 경기에서는 2골을 넣고 실점하지 않은 셈이다. 무실점 경기는 22경기 중 17경기에 달한다.

독일대표팀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명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던 슈틸리케는 ‘공격을 잘하는 팀은 경기에서 이기지만, 수비를 잘하는 팀은 우승을 차지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대한축구협회 기술 콘퍼런스에서 “공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도 상대 선수와의 거리를 4m~4m83㎝로 유지해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단위까지 써 가며 수비를 강조했다. 대표팀 미드필더 구자철은 “경기를 잘하는 팀이 강팀이 아니라 이기는 팀이 강팀”이라고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기는 축구’만큼 강조하는 게 ‘원팀(one team)’이다. 슈틸리케호는 지난 1월 호주와 아시안컵 결승을 앞두고 라커룸에 이청용(27·크리스탈팰리스)과 구자철의 유니폼을 걸어뒀다. 이청용과 구자철이 부상으로 대회에서 도중하차했지만, 그라운드에 나서는 선수들이 한마음으로 뛰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우승국 독일대표팀이 결승전 승리 후 대회 직전 부상으로 낙마한 마르코 로이스(26·도르트문트) 유니폼을 펼친 것과 비슷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들 개개인이 제 몫을 수행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축구를 원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 소집 때 한국영(25·카타르SC)에게 2014~15시즌 바르셀로나(스페인)와 유벤투스(이탈리아)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세 장면을 편집해 보여줬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영에게 “바르셀로나 수비형 미드필더 세르히오 부스케츠(27)는 리오넬 메시(28)가 수비진영까지 내려와 공을 달라 하면 물건 건네듯 준다. 세계적인 선수 부스케츠는 드리블과 슈팅 등 어디 하나 처지는 선수가 아닌데도, 자신의 임무를 안다”며 “선수들은 포지션별로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충실히 해야 하고, 벗어나는 행동은 팀에 해가 된다”고 강조했다.

슈틸리케는 선수 시절 공이 가는 곳마다 나타났다. 지치지 않는 왕성한 활동량을 선보여 ‘폐(肺)’라고 불렸다. 최전방 공격수 이정협은 슈틸리케처럼 상대 엔드라인까지 압박하면서 뛴다. 주장 겸 중앙 미드필더인 기성용(26·스완지시티)은 중원사령관 역할을 수행한다. 노장수비수 곽태휘(34·알힐랄)는 수비진을 진두지휘하고, 골키퍼 김승규(25·울산)는 최후의 저지선을 책임진다.

비 맞는 백발 감독, 누가 따르지 않으랴

?슈틸리케 감독이 지난해 12월 12일 서울 중계본동 104마을에서 열린 ‘KFA(대한축구협회) 축구사랑나누기 연탄나눔 봉사활동’에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 연탄을 나르고 있다. /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슈틸리케 감독이 지휘관으로 전쟁을 이끈다면 부하들이 목숨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이다.” 지난 1월 아시안컵과 8월 동아시안컵 단장을 맡은 유대우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슈틸리케 감독을 이렇게 평가했다. 육군 소장 출신 유 단장은 “군대 지휘관으로 본다면 지장(智將)·용장(勇將)·덕장(德將)의 모습을 골고루 갖췄다”고 말했다.

경기를 치른 뒤 슈틸리케 감독의 와이셔츠는 늘 땀에 흠뻑 젖어 있다. 유 단장은 “감독님은 경기 중 비가 쏟아져도 우의를 입지 않는다. 선수들과 똑같이 비를 맞으며 함께 뛴다. 아시안컵 때 비를 너무 맞아서 감기에 걸리기도 했다”며 “일본 감독(할리호지치)은 비를 피해 벤치 안에만 앉아 있더라”고 말했다.

이어 유 단장은 “슈틸리케 감독이 경기 전 선수들에게 ‘유니폼에 새겨진 호랑이 마크(축구 대표팀 엠블럼)는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우리도 호랑이처럼 상대를 제압하고 포효하자’며 선수들 투쟁심을 끌어올렸다”며 “1954년생인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팀이 지도자로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인지 혼신을 다하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무뚝뚝한 독일 할아버지 같지만 다정다감하다. 동아시안컵 도중 부상으로 낙마한 여자 대표팀 심서연(26·이천대교)까지 챙겼을 정도다. 유 단장은 “슈틸리케 감독이 심서연에게 위로의 화환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단 자신의 이름은 빼고 ‘남자 선수단 일동’으로 해달라고 당부했다”며 “군대에서 지휘관이 진심을 보여주면, 병사들도 진심으로 화답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들을 잘 어루만져준다”고 말했다.

동아시안컵을 지켜 본 중국 LETV의 첸이통 기자는 “한국 감독은 경기장에 입장하는 선수들과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나누더라. 선수들과 스킨십을 통해 믿음을 심어주는 것같다”고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9월 라오스전 기자회견이 끝난 뒤 갑자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과 김진현(28·세레소 오사카)을 잊지 않고 있다”며 빠른 쾌유를 빌었다. 당시 공격수 이정협과 골키퍼 김진현은 큰 부상을 당해 재활 중이었다. 이정협은 “병원에서 들었다. 감독님은 내게 은인이다. 빨리 부상에서 회복해 다시 태극마크를 달겠다”고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 체제에서 팀내 분위기는 자유분방하다. 지난 1월 아시안컵 당시 손흥민(23·토트넘)과 김진수(23·호펜하임)가 차두리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격의 없이 장난쳤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단 아침식사를 선수들의 자율에 맡긴다. 과거 한국인 감독 시절 선수들은 정해진 시간에 전원이 함께 아침을 먹어야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된장찌개·청국장 등 한국음식도 잘 먹는다. 그런데 국과 찌개가 수프인 줄 알고 늘 밥보다 먼저 먹는다. 주위에서 “밥과 함께 먹지 않으면 짜다”고 말하면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말로 “맛있어요!”라고 말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감독 임기가 끝난 뒤 어떤 지도자로 기억되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한국에서 축구란 스포츠가 일상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좀 더 많이 화제가 됐으면 하는 게 큰 목표다. 사람들이 술이나 커피를 한잔할 때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축구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한다. 축구경기를 중계하다가 방송사의 편성 관계상 중간에 끊는 불상사가 없었으면 좋겠다”며 “축구가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민들 마음에 와 닿는 축구를 하겠다”고 말했다.

글 = 박린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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