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향기] 휴~ 늦깎이 취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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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일곱살 터울진 작은 아이가 3학년이 된 올해 봄부터, 10년 이상을 전업주부로 지내온 나는 극비리에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향 안전 지원'이라는 원칙 아래 시간제일 것, 주말과 방학은 아이와 함께 쉴 수 있을 것 등의 조건을 달았다. 정보지부터 꼼꼼하게 살폈다. 가족들에겐 내색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안유지에 구멍이 나고 말았다. 눈치가 9단인 작은 아이가 어느 날 나에게 불쑥 던진 말.

"엄마, 일하실 거면 우리 학교 급식실은 어때요?"

마침 충원 계획이 있던 터라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계약직인데도 보건증.진단서 등 서류를 다섯 가지나 준비해야 했다. 이른 퇴근시간, 가까운 거리, 주말.방학에 쉴 수 있다는 장밋빛 장점들을 열거하면서 나는 완벽한 선택이라고 자신했다.

처음 얼마간은 힘든 줄 모르고 지냈다. 첫 봉급을 받아들고 신나게 외쳤다.

"오늘 엄마가 쏜다!"

그러나 천식이 재발하면서 밤에 잠을 설치게 됐고, 그런 나에게 식판의 무게는 거의 절망이었다. 퇴근해서는 집안 일에 손대기조차 힘들었다.

좀더 참으면 여름방학이라는 구원병이 달려올 터였다. 그러나 몹시 무덥던 어느 날, '하야'를 결심하는 계기가 찾아왔다. 두시간 남짓 불판 옆에서 땀흘리며 김치전을 부치다가 배식 시간이 되자 쓰러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것이다. 보름간 집 안방에서 쉬며 '패인(敗因) 분석 백서'를 만들었다.

"힘들고 위험하다"는 주변의 충고를 무시한 점, 요리에 대한 자신감만 갖고 덤벼들었던 점….

그래도 잃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는 열심히 먹고 운동해 체력을 키우기로 했고, 가족들이 엄마의 부재 덕분에 가사노동의 가치를 체험한 것도 큰 소득이었다. 급식실 조리원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도 커졌다.

박혜란(충북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4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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