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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늘리는데 1800억 부담금, 중국으로 방향 튼 기아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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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기아차의 경기도 광명시 ‘소하리 공장’은 ‘부담금 규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공장은 1970년에 생겼다. 1년 뒤 일대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지정됐다. 증축은 쉽지 않았다. 기아차는 2011년부터 증축을 추진했지만 1800억원에 이르는 ‘개발제한구역 보전 부담금’이 발목을 잡았다. 이후 법이 개정돼 부담금이 줄었지만 그만큼 ‘기회비용’을 날렸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최근 중국 충칭(重慶)·옌청(鹽城) 등에 공장을 잇따라 지으며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껌통·휴대폰에도 붙는 준조세
기업 이익, 3년간 16% 줄었는데
각종 부담금은 2조원 넘게 늘어

“과도한 부담 덜어달라” 호소에도
정부, 내년엔 7% 더 걷기로

 껌을 만드는 제과업체 A사도 ‘폐기물 부담금’ 때문에 속을 썩는다. 환경부는 93년부터 껌과 플라스틱 용기 등에 부담금을 물리고 있다. A사의 부담금은 2000년 3억원이었지만 요율이 증가하면서 올해엔 26억원까지 뛰었다. 또 현재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자들은 ‘재활용’을 위해 의무적으로 일정량을 회수해야 한다. 이를 채우지 못하면 부과금을 낸다. 업계 관계자는 “중고폰이 해외로 팔려 나가는 등 회수량이 줄어들면서 갈수록 부과금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부담금을 포함한 ‘준(準)조세’ 폭탄에 시름하는 기업이 적잖다. 기업들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에 강하게 거부감을 보이는 이유다. 10년간 1조원이란 목표를 설정한 만큼 기업에 ‘할당식’으로 기부를 요청할 경우 ‘준조세 혹’을 하나 더 붙인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성국 이화여대 경영대학장은 “향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나 한·중·일 FTA 등이 타결되면 그때는 또 기업들에 몇조원을 요구할 건가”라며 “공익이란 이름 아래 재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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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기업들 부담은 만만치 않다. 준조세에서 공익적 성격이 강한 사회보험료를 뺀 ‘법정 부담금’만 해도 2011년 14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17조2000억원으로 16%가량 늘었다.

 그런데 통계청 기업활동 조사에 따르면 같은 기간에 ‘기업 순이익’은 ‘108조9000억원→93조7000억원’으로 16% 줄었다. 돈을 더 못 버는데도 준조세 부담만 커진 것이다.

 투자 재원이 줄수록 새로운 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찾기 위한 연구개발(R&D)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6년 이후 지속적으로 R&D를 수행한 기업의 매출은 전체 평균의 2.8배에 달했다. R&D 효과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얘기다.

 법정 부담금의 경우 환경부(23개)·국토교통부(17개) 쪽이 많다. 공장 건설 등 기업 활동과 관련된 내용도 적잖다. 특히 정부는 내년에 18개 부처에서 거둘 ‘부담금’ 징수액을 7%가량 늘린 20조1200억원으로 잡았다. ‘분담금 20조원 진입’은 처음이다. 담배를 사는 개별 흡연자들이 내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도 늘게 되지만 석유·대체연료 수입·판매 부과금도 올해보다 4% 많은 966억원을 더 걷는다. 부담금은 60년대 이후 7개로 시작해 80년대 30여 개를 거쳐 꾸준히 늘었다. 기획재정부는 “수질·폐기물 등 환경에 대한 관심이 늘고 개발에 따른 녹지 보전 필요성 등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부과 대상과 기준이 불합리한 부담금을 폐지하고 과도한 요율도 내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기업의 부담 증가는 광의의 준조세에 포함되는 ‘기부금’에서도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의 나눔실태 조사에 따르면 법인 기부금은 2006년 2조8000억원에서 2013년 4조6500억원으로 1.7배가 됐다. 이 기간에 개인 기부금은 5조3500억원에서 7조8300억원으로 1.5배가 되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FTA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으로 촉발된 준조세 부담 논란이 그동안 기업들 발목을 잡아 온 ‘수도권·인허가 규제’ 등과 얽혀 ‘투자심리’를 더욱 위축시키지 않을까 우려한다. 서울대 이상승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들 투자 결정 시 가장 큰 걸림돌이 수도권 입지 규제”라며 “이런 규제에 더해 필요할 때마다 준조세 방식의 압력이 들어오면 투자를 억누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준술·이수기·임지수 기자 jsool@joongang.co.kr

◆준조세=세금은 아니지만 꼭 납부해야 하는 법정부담금과 사회보험금 등을 말한다. 부담금은 공익 관련 사업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과하는 것으로 정부 부처들이 관리한다. 광의의 준조세엔 기부금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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