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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엉 운 최형우 … 김무성 “난 YS의 정치적 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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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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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오른쪽 둘째)이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주저앉아 소리 내 울고 있다. 최 전 장관은 고 김동영 의원과 함께 민주화운동 시절 ‘좌(左)동영 우(右)형우’라고 불렸다. [사진공동취재단]

나이 여든(80세)의 노정객은 부인의 부축으로 힘겹게 걸음을 옮기며 현관에서부터 아이처럼 꺼이꺼이 울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오른팔’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었다. 그는 빈소에 앉아서도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오랜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다. “그래, 오른팔이었지. 후계자로도 거론됐고….” 박 전 의장도 YS가 총재였던 민주자유당(민자당)에서 ‘명대변인’ 소리를 들어 정치권에 안착할 수 있었다.

여야 모두 모인 서울대병원 빈소
김무성, 엎드려 절하다 끝내 울어
“흉내 못 낼 개혁 이룬 불세출 영웅”

 22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엔 한국 정치의 ‘과거’와 ‘오늘’이 공존했다. YS와 함께 대한민국 정치사의 한 장(章)을 만든 인사들이, 그 다음 세대의 여야 정치인들이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고인을 추억하고 애도했다.

 ◆상도동계·YS키드·9룡=가장 먼저 빈소에 모인 건 ‘상도동계’(YS 자택이 상도동이어서 생긴 말) 사람들이었다. 서울대병원의 공식 서거 발표(오전 2시)가 있은 지 30분 만에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빈소에 도착했고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도 오전 7시30분 등장했다. 김 전 의장은 YS가 신민당 원내총무로 박정희 정부와 치열하게 싸우던 1969년 원내부총무였고 윤 전 장관은 YS가 집권한 뒤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됐다.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빈소에서 조문객들을 맞았다. 서 최고위원은 “정치인들 중에 YS가 보내준 멸치를 안 먹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생전 YS는 아버지(김홍조옹, 2008년 97세로 별세)가 운영하던 멸치어장에서 공수한 멸치를 명절 때마다 동료·선후배 정치인들에게 선물하곤 했다. 김영삼 청와대에서 일한 이원종 전 정무수석, 홍인길 전 총무수석, 그리고 강삼재 전 신한국당 사무총장 등도 장례식장을 지켰다.

 YS가 집권한 뒤 정치적으로 길러낸 이른바 ‘YS키드’들도 모였다. 그중 한 명인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전 상임고문도 칩거 중인 전남 강진에서 6시간여를 달려 오후 늦게 빈소에 도착했다. 손 전 고문은 93년 김영삼 정부에서 민주계(YS계) 몫으로 공천을 받아 의원이 됐다. YS 정부 말(96~97년)엔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냈다. 손 전 고문은 “(YS는) 대한민국 현대민주주의의 역사”라며 “(현대사는) 김영삼 정부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입문과 관련해서도 “국회의원 선거 나올 때 ‘(김영삼) 대통령이 나를 불렀다. 개혁에 힘을 보태겠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정치에 참여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밤 늦도록 빈소를 지켰다. 민중당 활동을 하다가 96년 15대 총선에서 YS에게 발탁돼 정계에 입문한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 김문수 전 경기지사도 조문을 왔다.

 이날 빈소엔 이수성 전 국무총리,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 박찬종 전 의원도 모습을 나타냈다. 이들은 모두 YS가 대통령에 재임할 당시 경쟁적 후계구도 속에 포함된 ‘9룡(九龍)’이었다.

 ◆김무성과 문재인=상도동계 출신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오전 8시30분쯤 빈소에 도착했다. 영정에 헌화한 뒤 향을 피우려던 김 대표는 손이 떨려 향을 한 차례 떨어뜨렸다. 엎드려 절을 하다가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두 번째 절을 하고는 울음을 삼키느라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일어선 그의 손엔 보라색 손수건이 들려 있었다. 김 대표는 85년 YS가 주도했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에 합류하면서 정계에 입문한 ‘상도동 막내’였다. 그는 기자들에게 “(YS는) 재임 중에 누구도 흉내 못 낼 위대한 개혁 업적을 만드신 불세출의 영웅이었다”며 “나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상주(喪主) 역할도 하시는 거냐”는 질문에 “그렇다. 우리(상도동계)가 다 상주다”라고도 했다. 실제로 김 대표는 이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빈소를 지켰다.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도 상주의 모습 그대로였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도 이종걸 원내대표, 정청래·전병헌 최고위원 등과 함께 오전에 빈소를 방문했다. 문 대표는 김무성 대표, YS의 차남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등과 함께 민주화운동 시절 고인의 모습을 회상했다.

 ▶문 대표=“이 땅 민주화의 역사를 만들다시피 하셨는데….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고인의 말씀을 되새겨야 할 것 같다.”

 ▶김현철 전 소장=“오늘 (빈소에서도) 그 말씀 얘기가 많이 나왔다.”

 ▶문 대표=“‘박정희씨는 애국심을 독점하지 말라’는 그런 말씀하신 것도 생각난다.”

 ▶김 대표=“그런 말씀도 하셨나?”

 ▶문 대표=“(YS가) 40대 기수론을 주장해 마지막에 김대중 후보에게 패한 뒤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김 후보 지지연설을 하는데 ‘김대중 동지의 승리는 바로 나의 승리고 국민의 승리’라고 하셨다.”

 문 대표가 지칭한 건 YS가 DJ와 경쟁했던 71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 때의 일화다. 문 대표는 “그때가 우리나라 야당사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문 대표는 조문을 마치고 나가다 빈소에 들어서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마주치기도 했다. 두 사람은 별다른 대화 없이 악수만 나눴다.

 ◆동교동계도 조문=상도동계와 함께 대한민국 현대정치사의 양대 축이었던 ‘동교동계’(DJ 자택이 동교동에 있어서 생긴 말) 인사들 중에선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이 가장 먼저(오전 8시50분) 빈소를 찾았다. 이어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도 조문을 했다. 이들은 87년과 92년 대선에서 DJ 편에 서서 YS 진영과 양보 없이 격돌했던 ‘적장(敵將)’이었지만 이날 YS의 영정 앞에 고개를 숙였다. 한 전 대표는 “(YS는) 개인의 정치사가 우리 현대사의 한 장이었던 분”이라고 했다.

 이 밖에 야권에선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 등 새정치연합 정치인들이 조문했다. 새정치연합 지도부도 이날 오전 하려던 정기국회 관련 정부·여당 비판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당 관계자는 “국가장이 진행 중인 만큼 여당과의 충돌은 최소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남궁욱·위문희·손국희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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