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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통합과 화합 … YS가 던진 과제 되새겨야 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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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영삼(YS) 제14대 대통령이 어제 서거했다. 고인은 ‘거산(巨山)’이란 아호처럼 한국 현대 정치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거대한 산’이었다. 88년 고인의 삶엔 격렬한 좌우 대립 속에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권위주의·군사독재 정부, 그리고 문민정부로 이어져오는 격동의 한국사가 고스란히 응축돼 있다. 무엇보다 고인은 국민과 함께 호흡하며 국민과 고락을 함께했던 정치인이었다. 그는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로 26세의 최연소 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정치활동 규제로 출마하지 못했던 11·12대 총선을 제외하고 내리 당선돼 9선 의원(3·5·6·7·8·9·10·13·14대)의 기록을 세웠다. 그가 세운 ‘최연소’ 기록과 ‘최다선(9선)’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고인이 얼마나 오랫동안 국민 속에 살아 숨쉬며 국민의 성원과 지지를 받아온 정치인이었는지를 말해준다.

 6년 전 김대중(DJ·15대 대통령) 전 대통령이 서거한 데 이어 YS마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지난 50여 년간 한국 정치를 풍미해온 주역인 ‘3김’의 정치가 역사적인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됐다. 민주화 운동의 평생 동지요 라이벌이자, 나란히 대통령직의 바통을 이어온 양김 시대가 한 획을 그음에 따라 한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지향과 시대적 과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고인의 일생은 반독재와 민주주의 쟁취 투쟁으로 점철됐다. 54년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사사오입 개헌안을 통과시킨 데 실망해 탈당, 야당에 투신했다. 5·16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의 군정 연장을 반대하는 시위로 구속된 데 이어 79년엔 의원직에서도 제명되는 고초를 겪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은 이때 나왔다. 80년 신군부 등장 후 23일간의 단식 투쟁과 가택연금 등 정치적 박해를 받으면서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결성과 직선제 개헌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대통령에 취임한 뒤부터는 문민화를 위한 개혁에 정치생명을 걸었다. 대통령 재임 중 “청와대 메뉴는 칼국수 아니면 설렁탕”이라고 선언하고 금융실명제·부동산실명제 도입,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청산,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 부패 척결 등을 밀어붙였다. 전방위적인 개혁 추진은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반발 등 다소간의 부작용도 낳았지만 한국 사회를 한 단계 투명화·선진화하는 데 기여했다. ‘강을 건넌 뒤 뗏목을 버릴 줄 아는’ 지혜와 통찰력, 시대정신에 충실하려는 사명감은 ‘정치 9단’으로 불리던 고인의 위대한 면모다. 이는 포퓰리즘 논란에 휘말리고 있는 ‘여의도’ 정치권에 던지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YS는 논란의 정치인이기도 했다. 평생을 민주화에 헌신했으면서도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군사정권의 후예인 민주정의당·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감행했다. 새롭게 탄생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의 대선 후보를 거머쥠으로써 중학생 시절부터 갈망하던 ‘대통령의 꿈’을 이뤘지만 이념과 노선을 넘나드는 무분별한 이합집산으로 인해 정치 불신 풍조가 생겨나는 후유증을 남겼다. 3김이 분할한 지역 할거정치와 지역 갈등, ‘상도동계’로 지칭되는 가신·측근 정치의 폐해를 넘지 못한 건 그의 한계였다. 또 임기 중 터져나온 친인척 비리와 외환위기로 인한 국가부도 사태는 씻을 수 없는 멍에로 남았다. 이로 인해 그는 국민적 지지를 상실했고 개혁 작업도 동력을 잃고 말았다.

 고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현재진행형’이다. 그가 남긴 공(功)과 과(過)는 앞으로도 숱한 논쟁을 부를 것이다. 독재에 항거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고인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됐다. 동시에 그는 우리들에게 무거운 숙제를 던지고 있다. 임종 전 병상의 고인이 차남 현철씨를 통해 필담으로 남긴 마지막 말은 ‘통합’과 ‘화합’이었다. 의회주의자였던 노(老) 정객의 마지막 가는 길에도 분열과 대립, 증오와 분노를 양산하고 있는 한국 사회와 정치가 미덥지 못했던 것일까. 그가 던진 과제를 곱씹으며 삼가 고개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