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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연명의료 중단 법안 내일 반드시 처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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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연명의료 중단(일명 존엄사)과 호스피스 관련 법안들이 처음으로 논의된다. 품위 있는 생의 마무리를 원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논의는 정말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국민들은 이번에 국회가 웰다잉(좋은 죽음)을 위해 중요한 결단을 내려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법안심사소위에 올라가는 법안은 5개다. 그런데 이 법안들이 24일 논의 대상 리스트의 끄트머리에 잡혀 있다. 자칫하다가는 다른 법안에 밀려 논의조차 못하는 운명에 처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내년 2월 임시국회는 4월 총선 때문에 연명의료 법안을 논의하기 힘들 게 뻔하다. 그러면 쓰레기통에 처박혀 웰다잉 확산에 찬물을 끼얹게 될 것이다.

 존엄사는 보수도 아니요, 진보도 아니다. 좌우의 문제도 아니다. 임종이 임박해 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CPR)·항암제·혈액투석 치료를 안 받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자는 것이니 이념이 개입할 이유가 없다. 국민의 70% 이상이, 특히 노인의 90%가 연명의료에 반대한다(2014년 노인실태조사). 2009년 5월 대법원이 세브란스 김 할머니의 존엄사를 허용한 역사적 판결을 한 지 6년이 지났는데도 의미를 되살리지 못하고 있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국생위)가 2013년 7월 “연명의료 중단(일명 존엄사)을 법제화하라”고 권고한 지도 2년4개월 지났다. 국생위가 어떤 데인가. 과학계·의료계·법조인·정부뿐만 아니라 종교계 대표가 참여한 사회적 합의기구다. 24일 국회에서 논의되는 법률에 대해 종교계도 반대하지 않는다. 어디를 봐도 입법하지 않을 근거가 없다.

 연명의료를 중단할 법적 근거가 없어 종합병원 중환자실이나 요양병원의 의료기기에 둘러싸여 한 해에 5만여 명이 연명의료를 받다 최후를 맞는다. 본인의 뜻과 관계 없이 연명의료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법률이 있어야 환자가 원할 경우 의료진이 연명의료를 시작하지 않거나 중단해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 생전에 연명의료 거부를 담은 사전의료의향서(AD)나 연명의료계획서(POLST)를 작성해 국가연명의료관리기관(가칭)에 등록해두면 언제 어디서나 이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또 호스피스 중앙센터·권역센터가 설치돼 완화의료를 받는 말기 암환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다. 지금은 13% 정도밖에 이용하지 못한다. 법안이 만들어지면 3000억원 이상의 건강보험 지출을 줄이는 부수적인 이득도 생긴다.

 한국은 올해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부설연구소(EIU)의 ‘죽음의 질’ 평가에서 18위에 올랐다. 5년 전보다 14단계 상승했다. 하지만 완화의료 받는 비율은 33위에 그쳤다. 법률 미비 때문이다. 국회는 24일 다른 어떤 법안보다 우선적으로 연명의료 중단과 호스피스 관련 법안을 논의해서 처리해야 한다. 공포 2년 후로 돼 있는 시행 시기도 앞당겨야 한다.